이 ‘막장예능’의 묘한 감칠맛은 어디서 오는가
jTBC의 예능 ‘아는 형님’의 첫인상은 자기들끼리 서열을 나누는 남자들 모임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트집 잡아서 끝까지 놀리고, 유치한 호기심 하나에 죽자고 달려든다. 예를 들면 술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호감을 끌어내는 방법, 야자타임에서 후배가 지켜야 할 적정선 등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들은 직접 역할극을 한다.?여자를 대상화하거나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표현 등이 나온다는 점에서, 공중파 같은 데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내용도 거침없이 꺼내어 다루는 ‘아는 형님’은, 곧 마니아를 양성하였다.
이윽고 스스로 학교 학생이 되어서 게스트를 전학생으로 받는 ‘형님 학교’ 설정이 안착하면서, 프로그램을 보는 눈도 점점 많아졌다. 그리하여 지금 ‘아는 형님’이라는 예능은 시청자들의 호불호와 별개로 최근 화제성이 있는 프로그램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고 있다. 그리고 이 화제성의 이면에는 ‘구조’가 있다.?남들이 보기에 무례한 어떤 말들을 프로그램 안에서 희석하고 반복하면서 재미를 만드는 그 짜임새 말이다.
예컨대 최근에 방영했던 회차에 라붐 솔빈이 나왔을 때, ‘아는 형님’의 형님인 김희철은 뭘 했던가? 습관처럼 꺼내드는 ‘담배 드립’을 또 꺼냈다. 그가 MC로 있는 ‘주간아이돌’에서는 절대 꺼낼 수 없을 법한 소재였다. 김희철은 안 그럴 줄 알았더니 역시 사람이 종편 가면 미치는가보다, 하고 개인을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그 이전에, 프로그램 자체의 구조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간아이돌’은 “아이돌을 위한, 아이돌에 의한 방송”을 표방하며, ‘아는 형님’의 카메라 앞에 서는 모든 사람은 (비록 거대한 자작극에 불과할지언정) 일단은 서로 반말을 하는 동급생이다. 프로그램의 기획이 다르고, 출연진은 프로그램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자신을 드러내니, 시청자들은 그들을 하나의 작품 속 하나의 캐릭터 설정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게 그 속에서 웃기기 때문에 웃는다. 이것이, 지금 숱한 논란을 쏟아내고 있는 ‘아는 형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는 근간이다.
이 묘한 재미는 누구의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는가
‘아는 형님’과 매우 흡사한 기존의 예능이 있다. MC들이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면서 시작되었고, ‘막말’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고갔으며, 그 속에서 ‘이건 아니지 않느냐’ 하는 논란을 수시로 촉발하던 예능, ‘라디오스타’가 그것이다. 평일 밤 황금 시간대에 구색 맞추기로 편성된 이 예능은 ‘무속인 강호동의 신당 세트’, ‘일대일 고민 해결’ 등의 강력한 기획으로 무장했던 ‘무릎팍도사’와 정면으로 다르게, 그저 필터링 없이 생방송되는 보이는 라디오라는 세트 하나만을 들고 나왔다.
처음 시작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도 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항상 마지막에는 진행자들이 외치는 “다음에 만나요, 제발!” 끝인사와 함께 아련하게 끝이 났다. 그러던 프로그램이 언제 이렇게 컸느냐고? 그 발전 과정이 ‘아는 형님’과 흡사하다. 나오는 게스트들이 “저는 ‘무릎팍도사’에 나오고 싶었어요“라고 공개 성토를 하면, 네 명의 MC들은 ‘거지 같은 게스트’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이런 ‘날것’의 상황과 표현이 가능한 토크쇼로서, ‘라디오스타’는 마니아 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 첫 방영 이래 10년이 지나고 ‘무릎팍도사’가 그 사이에 종영하는 동안 ‘라디오스타’는 건재하다. 게스트의 허점을 잡는 MC들에게 하이에나 탈을 씌우는 효과는 이제 이 쇼의 방향성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당연해졌고, 김구라가 맥락 없이 던지는 ‘아무말’에는 녹화 현장의 윤종신과 편집실의 제작진이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듯 어떤 그럴듯한 의미를 덧칠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단 하나, 발전하려는 의지다. 막장 분위기로 웃기겠다는 것 이상을 넘어서,?‘무한도전’이며 ‘1박2일’ 같은 예능들과 경쟁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당시 ‘라디오스타’의 경쟁 대상은 캐릭터 예능이라는 대세였다. 더 센 ‘욕배틀’이나 더 막장인 코너 기획은 답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네 명의 MC들은 짧고도 긴밀한 호흡을 훈련했고, 최근에는 출연진에게 지속적으로 공연 무대를 만들어주는 ‘고품격 음악 방송’의 취지까지 더해졌다.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성공적이다. 이제 ‘라디오스타’는 논란을 거의 낳지 않는 예능이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라스’ 안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여전히 누군가에겐 유해할 수 있겠지만, 그 유독성은 대단히 희석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왜 이 프로그램에 일말의 베팅을 하게 되는가
다시,?TV의 시간은 10년 전으로 돌아왔다. 최근의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 + 캐릭터 예능’의 대세가 하락하고 시즌제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요리, 체육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주목하는 포맷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아는 형님’은 이 유행 전환기를 맞아 오랜만에 등장한 캐릭터 예능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정확히 10년쯤 전의 윤리 감수성에 기반한 ‘막말과 솔직 사이’의 웃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복고적이다.
그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방송 분량과 한 주의 ‘명언록’이 확보되는 프로그램의 등장은, 지금 이 시점에서 확실히 고무적이다. 하지만?지금 이 시점은 분명 2016년이고, 이제 우리나라의 시청자들은?예능 안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지 않으면서 웃긴, 잘 가공된 웃음을 찾고 있다. ‘여성을 혐오해야 웃길 수 있는 개그 프로그램’의 유독성 문제가 제기되는 오늘날, 이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금 ‘아는 형님’은 위태롭다. 너무 나이가 들어서 추해진 그들은 ‘학교의 학생’으로 스스로를 낮추는 전략을 택했지만, 정말 실제로도 그들이 스스로를 낮추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게스트들이 모르는 예전 노래를 부르면서 저들끼리 흥에 취한다거나, 무례한 말들을 있는 대로 다 해 놓고는 전부 농담이라고 얼버무린다거나 하는 걸 보았을 때 말이다. 이미 기획과 설정이 결정된 예능에서 웃음의 내용이 문제시되고 있다면, 이 프로그램은 과연 그 지적을 반영하는 ‘발전’이 가능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아는 형님’이 재미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편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한 가지 근거가 있다면, ‘아는 형님’은 기획의 구조가 갖는 힘―모두가 모두에게 반말을 할 경우 생기는 화학작용 등―을 아는 것 같다는 점이다.?그 힘을 사회적 대세에 부응하여 사용하려는 의지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아는 형님’은 그 옛날 ‘라디오스타’가 누렸던 10년의 황금기를 전수받는 예능이 될 여지가 있다. 못 한다면??널리고 널린 ‘빻은’ 예능 중 하나로 전락할 뿐이고.
이해찬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
- 트와이스를 따라하는 ’02년생 김지영’ 에게 - 2017년 5월 17일
- 거기 새내기, 흑역사가 쌓여서 걱정인가요? - 2017년 3월 9일
- 신년맞이 해돋이구경 LIVE - 2017년 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