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피자집에서 시대의 ‘멸망’을 생각하다

폐업을 당할 뻔 했던 안암동 비스트로 ‘르구떼’에서의 만찬.

이것은, 이미 망해 본 사람들의 대화다

“저희 영업 계속 할수있게되었습니다.”

그 문자를 전달받았는데 기분이 오묘했다. 두어 달쯤 전 그곳의 ‘폐업 기념 쫑파티’에 가서 ‘이제야 이곳의 매력을 좀 아는가 싶으니까 헤어지는구나’ 아쉬워했는데, 그 이후 내내 계속 남았던 찝찝함과 서글픔의 뒷맛을 잊으려고 애쓰며 지내 왔는데, 달을 넘겨 9월이 되어서 생각지도 못한 그 연락이 왔던 것이다. “쥔장님”의 번호로 직접 단체발신된, 재개업 소식을 알리는 문자 연락이.

르구떼 재개업 알림 문자

다시 문을 연다는 르구떼(Le Gouter)는 우리 학교 앞 건물에서 수제 피자를 하는 곳이었고, 원래부터 처음부터 바로 그 자리에 언제나 항상 있어 온 듯한 가게였다. 그 가게가 없다거나 망한다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일이 없었기에, 어느 날 학교 대나무숲에 덩그러니 올라온 ‘르구떼 쥔장 세가지 답변’이 적지 않게 충격적이었다. 거기에 절절이 적힌 건물주의 갑질 이야기를 읽으며 분노했다.

감히 이곳을 없애버리려 한 건물주를 욕할 자리를 사장님께 마련해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인터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우리는 망한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담담하게, 그러나 똑똑히, 이 나라에 사람 하나 망하는 길이 얼마나 폭넓고 다양하게 잘 깔려 있는지를 조용히 검토하며, 덧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기어코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이제부터 시작될 인터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하자면, 그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인터뷰어는 반도의 흔한 문과였고 인터뷰이는 반도의 흔한 자영업자였다. 인터뷰가 진행된 때는 “마지막 영업”의 7월 말과 재개업의 9월 초 사이 그 언젠가였고, 장소는 아직 설비가 철거되지 않은 르구떼 매장 한복판이었다.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떠나가는 추억맛집 고별 인터뷰’ 이상의 무언가를 나누다가 왔다.

 

피자가 나빠서 망하는 피자집은, 거의 없다

일단은 얼마 전에 테이크아웃해 간 피자 이야기로 시작했다. 피자집 사장님다운 디테일한 자랑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이 바닥 대기업의 피자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누가 봐도, 르구떼가 피자가 나빠서 폐업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르구떼 사장님 (이하 르)

그때 피자는 괜찮았어요?

안학수 (이하 안)

네 맛있었습니다.

단호박은 처음이었죠?

단호박은 처음이었죠. 원래 루꼴라 좋아했어요. 그 루꼴라에 샐러드 올린 거 좋아했어요.

그것도 많이 자랑하고 싶었던 피자였는데, 생각보다 못 떴어요. 그거 정말 우리나라에 있는 루꼴라 피자 중에서 제일 낫다고 생각했는데, 개인 매장의 한계겠지요.

르구떼 시금치르꼴라 피자

ⓒ메뉴판닷컴

제가 커피번은 한번도 안 먹어봤네요. 커피번 맛있단 얘기 많이 들어봤는데

솔직히 호불호가 좀 갈려요. 단 거를 많이 좋아하는 분들은 좋아하는데, 단 거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어 이게 뭐야’ 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한 60%는 좋아하셔요.

커피번이라면 로○보이 그런 비슷한 맛인가요?

거기서 응용을 해 왔고, 특허가 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에요. 다른 데서는 그 도우를 만들지 못해요. 2년 전에 미스터피자에서 제 걸 모방했을 때도, 도우를 못 하니까 다른 방법을 썼지요.

초창기 르구떼의 커피번 도우 엣지는 휘핑크림을 발랐어요. 두 번 뿌리면 아주 단맛, 한 번 뿌리면 그냥 단맛, 안 뿌리면 덜 단맛인 식인데, 안 뿌린 게 가장 반응이 좋았고 단 거는 너무 소수 취향이었어요. 그래서 휘핑크림 없는 커피번 도우로 정착을 했는데, 미스터피자에서 굉장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게 나오더라고요.

그게 잘 됐나요? 미스터피자에서 휘핑크림 한 그런 얘기는 거의 못 들어봤는데

미스터피자 홍두깨번 홍보배너

재작년 2월에 홍두깨살+모카번엣지 피자가 출시된 바 있다 ⓒ미스터피자

처음에는 화가 났어요. 너네같이 큰 애들이 왜 내 거를…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 보니까, 가만히 놔두자 싶었죠. 얘네들도 사실 알아보고 만든 것일 텐데, 초반부터 이슈를 만들어서 얘네를 더 띄우거나 그러진 말자고. 그냥 내가 못 보여준 피자를 얘네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만약에 이게 뜨면, 제가 원조잖아요? 그럼 그땐 또 이득이 될 거고.

근데 얘네는 실패한 이유가, 이거는 제 도우랑 해야 어울려요. 미스터피자 쪽은 그냥 맛만 좋아서 흉내를 낸 거지만, (그걸로 충분할 거면) 제가 왜 도우를 개발했겠어요. 옛날에도 보면 사람들이 맛 가지고 신기한 시도를 많이들 했었어요. 카레 피자 같은 것들. 근데 그런 걸 하려면 그거에 어울리는 도우를 써야 하고, 도우부터 카레 향이 땡기게끔 해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며 잠시 다른 곳을 보는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껏 성공시킨 내 작품인데, “걔네들”이 그렇게 망쳐 놨지요.’

 

‘자기 일’을, 수익성 보고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가 전에 했던 가게에서 제가 만들었던 게, 쑥 피자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거 괜찮았어요. 근데 딱 지금 세대하고 그 직전 세대는 쑥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쑥의 그 강한 맛이, 부드러운 맛에 길들여진 세대한테는 안 맞았나 봐요.

그래서 제가 여러 군데 쑥을 다 써 봤는데, 김해 쪽에서 나는 쑥이 색이 옅고 향이 은은하게 오래 가는, 단맛도 조금 나는 걸 구해서 쓸 수 있었거든요. 그걸로 2년쯤 하다가, 그 쑥 공장이 망했어요. 다른 지방 쑥은 향이 너무 진한 거에요. 아무리 해도 그게 옅어지지가 않아서 쑥 피자를 못하게 되고, 또 다른 일들이 겹치면서 슬금슬금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하다가, 그냥 접게 되었어요.

르구떼 주방

르구떼 주방.

전에도 한 번 피자집 문을 닫아 보신 적이 있단 말씀이시죠?

그랬죠. 그게 2002년이었고, 그때 접으면서 다시는 피자를 안 하고 싶었는데, 그 사이에 방황도 좀 하고, 근데 가장이니까 돈은 또 벌어야 하고. 그렇게 한 2년 방황하다가 다시 회사를 가야겠다 싶어서 들어간 게 미스터피자였죠. 4년만 있다가 나오려고 했는데, 2008년에 나오려고 했던 게 2009년쯤에 나오게 되었죠. 그러고서 르구떼를 다시 시작한 게 2010년.

2004년부터 2009년까지면 미스터피자가 좀 적극적으로 커가던 때가 아니었나요? 그 전에는 미스터피자가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한 2002년쯤부터 떴죠 미스터피자가. 그 당시에는 회사 방침이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가맹점 입장에서 보면 정말 “개-갑질”이었어요. 가맹점은 무조건 30평 이상으로 차려야 하고, 가맹료는 평수대로 받았어요. 그러면 목 좋은 서울이나 도심 같은 데는 몰라도, 지방에서는 그렇게 장사가 안 되거든요. 근데, 그래도 됐으니까. 그렇게 가맹점들 늘려가면 돈이 되었으니까.

2000년대 후반에 가서 보니까, 이렇게 해서는 이 회사가 10년을 못 가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나왔어요. 제가 알기로 최근에 미스터피자 가맹점 수가 많이 줄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위기인 줄 알아야 하는데, 거기서 또 회장 갑질 사건까지 나왔으니까요.


당시 보도 ⓒYTN

근데 보면 한 2010년 초반 때부터 미스터피자가 좀 약세였어요.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친구들이랑 ‘미피 가자’ 그러면 ‘거기 말고도 맛있는 데 많은데 하필 거길 가냐’ 그랬죠. 식상해진 느낌이었달까.

원래 메이저 피자 프랜차이즈는 6개월에 한 번씩 새 제품을 내야 해요. 근데 어느 정도 되니까, 이제 더 이상 만들 피자가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프앤하프’ 같은 거 만들고, 이제 거기에 또 반을 가르고. 짧게는 호응이 있을 수는 있어도, 길게 보면 안 먹히는 거였죠. (피자 프랜차이즈는 보통) 거의 회장 1인 체제 기업이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오길 잘했죠.

녹취를 풀면서, 그동안의 ‘실패담’에 돈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차라리 원하는 식자재가 안타깝게 없어져서, 피자 프랜차이즈라는 사업에 명확한 한계가 있어서 같은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그에게는 ‘괜찮은 피자’를 만드는 일이 중요했지, 수익성이나 트렌드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세상은, 그에게 그다지 협조해 주지 않았다.

 

이 세상은, 이토록 비협조적이다

르구떼 개업일이 언제였죠?

2010년 4월 5일… 이 원래 개업이었는데 그날 새벽에 물난리가 나서, 4월 12일에 오픈했네요.

그러면 6년 넘게 하신 셈이네요. 단적으로 얘기해서, 르구떼는 성공이었나요,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하시나요?

결과는 이렇게 되었으니까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6년을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닐까요?

그건 그냥 작은 위안이죠. 개인 피자가 이만큼 버텼다는 게 위안 삼을 일인 것은 맞고요. 다만, 개인이 중대형 ‘업체’와 프랜차이즈를 상대로 버티기에는 좀더 많은 실력이나 자본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마케팅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월 500정도는 들어요.

르구떼는 마케팅을 어떻게 했나요?

첫 2년까지는 월 130~150정도의 광고비를 꾸준히 썼고, 온라인 오프라인 다 했어요. 버스 광고도 하고. 6개월 동안 7천만 원 잡고 광고를 했어요. 그때는 배달 매출도 좀 늘려보려고 했어서. 근데 한 달 배달 매출이 한 150 정도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그럼 사실상 적자인데,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배달 광고는 하지 말아야겠다, 하고 접었었죠. 그렇게 해서 2010년부터 쭉 상승곡선이다가… 그게 꺾이기 시작한 기점이, 14년 4월쯤.

그때가 왜요?

그게 세월호 때죠.

2014년 5월 세월호 여파 외식산업 동향

“세월호 참사 여파 식당매출 36%나 줄었어요” ⓒ 동아일보, 한국외식산업연구원

그때 이후로 매출이 20%가 줄었어요. 근데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죠. 저는 정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큰 회사들은 40% 이상 줄었어요.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다. 나 정도면 반등 기회가 있겠다. 그리고 매출도 그래도 회복한다 싶더니, 그랬는데 결정타가 된 게 작년이었어요.

뭐였죠?

메르스 터졌죠.

(탄식)

그 첫 달에는 조금 버텼는데, 그 다음 달에는 완전히 반타작이 났어요. 그때 이후로는… 그냥 회복 불능. 한번 잊혀진 가게들은,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르구떼 창가쪽

이 타이밍에 임대차 분쟁 건에 대해 질문했다. 여기서는 이 사연을 조금 장황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사장님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하고 있는 그 매장과 그 가게가, 그동안 그 뒤에서 어떻게 그 자리를 겨우겨우 버티며 사는지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 명도 계약 관련해서는 간략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처음에 건물주가 나가라고 한 건 14년 7월 말이었어요. 빼 달라, 그래서 권리금 받고 나가겠다, 했더니 그럼 자기가 들어오겠다 하더라고요. 당시 임대차보호법으로는, 본인이 들어올 테니 지금 비우라고 하면 세입자는 할 말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근데 내가 일궈놓은 게 이것밖에 없고, 이거 없으면 장사를 할 방법이 없다’ 하고 빌어서 계속 있었죠.

그러다가 1월쯤에 경기가 별로 안 좋아지니까 건물주가 원래 생각하고 있던 건물 계획을 취소하고 맘대로 장사해도 된다, 대신 임대료만 10% 올리자 해서 있었어요. 그러다가 작년 7~8월에 적자가 나서 임대료를 밀렸던 걸 9월 25일에 9월 것까지 해서 석 달치 임대료의 반을 냈어요. 그랬더니 10월쯤에, 갑자기 3개월이 밀렸으니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 그러면서 나가라는 거에요.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작년 5월 12일부로 법이 바뀌었어요. ‘3개월치 전체’ 임대료가 밀리지 않으면 해당이 없는 걸로 해석이 됐거든요. 근데 건물주 입장에서는 일단 아니라고, 해지하자고 하더라고요. 관리인은 그냥 건물주 말을 믿고. 그럼 법대로 해 보자. 그렇게 된 거죠. 참고로 저는 작년 11월말에 밀린 임대료를 다 냈고요.

이게 웃긴 게, 윗층은 그래도 꼬박꼬박 월세를 냈거든요. 그래서 안 나갈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재계약 때 건물주가 윗층 분들한테 보증금은 60%를 올리고 월세는 45% 올리자고 했다는 거에요. 이거 법적으로 불가능해요. 10% 이상 올릴 수가 없거든요.

그냥 나가 달란 얘기 같은데요?

그런 거죠. 사실은 애초부터 이 건물 1~3층을 다 자기 맘대로 어떻게 써 보고 싶으니까 꼬투리 잡아서 내보내고 싶었던 거에요. 잘 됐다, 이왕 이렇게 갈 거 부딪혀서 이겨야겠네. 그래서 자문을 구해봤어요. 들어 보니까 전문가들 대부분이 대체로들 그래요. 아마도 이번처럼 월세를 확실히 올려서 건물 값을 올려 놓고 ‘파는’ 계획인 거 같다고. 지금 보니까 그 말이 맞았죠.

그래서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원래는 6월 말까지만 (영업)하려고 했는데. 7월 8월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마이너스에요. 장사를 안 하는 게 나았거든요. 그런데 다만 법적 결과가 아직 안 나와 있으니까. 그래서 다시 임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젠 월세 300 줘 가면서 여기 있고 싶지가 않은 거에요. 저도 이제 지친 거죠. 무슨 복합매장 같은 걸 해서 대박을 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르구떼 전경

 

그저 우리가 우리들에게, 기한 없는 쿠폰이다

복합매장이라 하심은 어떤 뜻인가요?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게, ‘재구매’를 시켜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 우리가 전체적으로 맛은 있는데 ‘포인트’는 별로 없어요. 건강하게 만들어보자는 게 목표다 보니까 기름기도 많이 빼고, 그래서 맛에 임팩트는 없죠. 그러니 음식이 잘 기억이 안 나요. 가뜩이나 그런데 메르스 있고 뭐 하다 보니깐 잊혀지잖아요.

네. 아까 하신 말씀 생각나네요.

그리고 이제는 주변에 또 새롭게 생기는 음식점들이 엄청 다양해졌어요. 전에 비해서 점심/저녁때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엄청나게 다양해졌기 때문에. 대충 말하자면 전에 우리 가게가 선택지에 들어갈 확률이 한 1/10정도였다면, 지금은 한 1/30정도의 확률? 그렇게 줄었기 때문에 매출 감소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고요. 그걸 어떻게 바꿔보려고 복합매장을 한번 생각해본 거였는데, 시도를 못 했네요. 복합매장으로 갔으면 그나마 신선도를 조금 더 유지할 수 있었겠죠.

피자랑 복합매장을 한다면 어떤 거랑 복합매장을 하실 생각이셨나요?

떡볶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매운 떡볶이.

(으음)

제가… 실력이 없어서 괜찮은 메이커들을 찾아봤는데. 다 짤렸어요. 복합매장은 안 하겠다고. 제가 시간이 좀더 있었더라면 다 찾아다니면서 ‘내가 이런 사람인데 이거 해 보고 싶다’ 어필도 제대로 하고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시간이 없잖아요. 가게도 주방 일은 거의 혼자 하고 있는 셈이고요.

르구떼 사장님

 

 

요즘 청년 창업이다, 스타트업이다, 뭐 그런 얘기들 많잖아요. 만약 주변의 대학생들이 창업을 한다고 하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한 마디만 해주신다면.

제 대답은 간단해요. 요즘 사람들은 성공을 쫓아가는데 있어서 작은 돈을 들여서 큰 돈을 벌려는 욕심이 너무 과해요.

대박을 노린단 말씀이시죠?

그렇죠. 무조건 대박. 5천을 투자해 놓고 월 천만 원을 벌기를 바라곤 해요. 자기 아이템이 그렇게 될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 정말 오산이에요. 정말 맞는 시장경제의 원리는, 5억을 들여서 월 천만 원을 버는 거죠. 5% 정도.

처음에는 월 100~200 정도로 시작하더라도 차츰 규모를 늘려가면서 5억이 될 때까지 가는 과정이 필요한 건데, 다들 작은 돈으로 큰 돈을 벌려고 하는 욕심이 너무 보여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 대박이 있겠죠. 다만 그걸 부러워하고 그거 위주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아요. 작은 돈으로 있는 실력을 만들고 버티면, 나중엔 본인이 더 먼저 알 거에요. 언제 월 천만 원을 벌 수 있게 되는지를.

한 번 풀린 사장님의 입담은 그간 못 했던 이야기를 계속 쏟아냈다. 르구떼 개업 비용의 40~50%를 차지했던 대출금, 늘고 있는 빚, 대학가 상권을 살리기 위한 축제 기획,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까지.

“오죽하면 피자 장인이 떡볶이를 하고 싶었겠어요”라는 탄식이 나올 때쯤 되자, 더 침울해지기 전에 인터뷰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주변 사람들을 얘기를 들어보면 르구떼 이제 없어진다고 하니까 '거기 맛있는데? 맛있는데 왜 없어지지?' 하면서 다들 더욱 아쉬워하는 그런 반응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사장님이랑 르구떼 같은 경우는 피자가 맛없어서, 사장님이 실력이 없어서 망했다기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이 너무 컸잖아요.

사실 매출 수지만 보면 안 망했어요. 그 사이에 5년간 식자재 값이 30% 올랐고, 임대료가 정확히 100% 올랐어요. 그렇게 따지면, 피자 가격은 제가 안 올렸는데, 수익 마진이 그렇게 줄어드는 거죠.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되나요?

그래서 인건비부터 줄였던거죠. 식자재를 줄여? 그건 양심에 안되고.

식자재 말씀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이지만, 아까 말씀하신 임팩트 없는 맛 있잖아요. 소비자인 제 입장에서 봤을 때 르구떼의 피자는 애초에 임팩트를 노리고 만든 피자가 아니잖아요? 담백하고 건강하고 깔끔한 피자인 거고, 먹을 때보다는 다 먹은 다음에 다시 먹고 싶어서 생각이 나는 그런 느낌의 피자고.

제가 원래 만들고 싶었던 피자는 사실 여러분이 직접 토핑을 골라서 만드는 그런 피자를 해 보고 싶었어요. 여기보다 좀 넓직한 홀 한가운데에 아예 토핑 냉장고 수레가 나가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직접 피자 토핑을 하나하나 올리고, 나중에 나갈 때는 ‘아무개 님의 피자가 나갑니다’ 같은 식으로 서빙되는 거죠.

이건 사실 중간 단계고, 진짜로 원래 하고 싶었던 건 유기농 피자에요. 시골에 한적한 곳에 제가 직접 채소 재배해서, 방문하신 분들이 직접 현장에서 채소랑 그런 토핑을 고르고, 저는 그걸 피자로 만들어내기만 하는. 그런 건강한 느낌의 피자를 만들고 싶었어요. 제주도에서 해보고 싶었는데, 제주도는 요즘 너무 땅값이 올라서. (웃음)

르구떼 입구

그림 자체는 이쁘게 들리는데, 그게 돈이 될까요?

애초에 제가 그런 피자를 만들 수 있는 때쯤 되면, 제가 돈을 바라고 피자를 하는 그런 나이는 지났을 때겠죠. 그냥 피자를 만들고, 여러분들이 피자를 만들러 방문해준다는 것 자체로 기쁜. 그냥 유지만 하면 되는 거에요. 제가 시골에서 쓴다면 얼마나 쓰겠어요. 돈 생각하고 하는 게 아닌 거죠.

확실히 사장님 말씀이나 평소의 모습을 보면 장삿속으로 피자집을 하시는 분은 아닌 거 같아서 진심이 느껴집니다. 혹시 그러면, 르구떼가 이러이러한 건 못 하더라도 이것만은 마지막까지 지키자 했던 가치 내지 기준이 있었을까요?

수제라는 점. 이게 저만 만들어내는 도우잖아요. 소스나 그런 것들도. 지금 개인 수제 피자가 우리나라에 몇 없어요. 그래서 그것, 개인 수제 피자집이라는 그 점을 지키고 싶었죠.

그리고 인터뷰어는 맨 처음에 물어봤어야 할 어떤 질문을 맨 끝에 물었고, 인터뷰이는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을 어떤 계획을 밝히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그래도 언젠가 잘 되어서 다시 만날 것을 믿는 마음으로 기약을 나누며 헤어지는 자리, 딱 그런 곳에서의 느낌으로.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쫑파티는 어떠셨어요?

예상보다… 솔직히 예상으로는 한 아홉 명이나 오려나? 했는데 많이 와 주셔서 좋았고요, 그리고 못 온 학생들이 문자 답장을 하나하나 다 보내주셨더라고요. 쫑파티는 제가 해 드리고 싶었던 마음의 100분의 1정도 밖에 못 해드렸죠. 그래도 이거라도 하니까, 조금 보답했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 느낌으로 좋았어요.

사실 가계가 폐업을 하면서 이렇게 쫑파티를 하는 경우도 흔치는 않잖아요?

반대로, 폐업을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뒤늦은 사랑을 주시는 고객님들도 별로 없죠.

친구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르구떼 폐업하기 전에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 고객분들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르구떼 쫑파티 사장님

쫑파티 당시 사장님의 모습.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음 장사를 하신다면…? 떡볶이랑 복합매장 얘기를 하셨고, 전에는 냉동피자 얘기도 하셨고.

제가 피자 만드는 기술은 있는데, 냉동하는 기술은 없어서. 독고다이 하면 이래서 힘들어요. (웃음) 우리나라 안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냉동피자는 하게 된다면 전문가를 알아봐야죠. 제 기술을 그대로 냉동시킬 수 있는 그런 데로. 여러 종류 안하고 1번, 2번 두 제품만, 재구매율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으로.

이 정도면 제가 여쭤보고 싶었던 것은 다 여쭤봤고, 혹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전에 말했지만, 어딜 가도, 그 쿠폰 들고 오시면, 저랑 끈을 연결해 주는 무엇이 될거에요. 이것만 보면 르구떼를 다녀간 친구구나. 그럼 우리는 한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될 거에요. 이 쿠폰을 채워주신 여러분들이, 르구떼를 기억해주신 분들이, 바로 제 인생의 쿠폰이니까.

어? 근데 저 그 쿠폰 못 받았는데요. (웃음)

그래요? 그럼 지금 하나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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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수

안학수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대학생입니다. 집에도 가고 싶고 취직도 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