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폭력 in 단톡방] ② 왜 이제서야 이렇게 터지는 거냐고?

살던 대로 살아온 세상이 그랬거든.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이건 꽤 사적인 문제다. 누구나 쉽게 열람해볼 수 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따위라면 또 모르겠으되,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지정된 사람들과 지정된 공간에서만 이야기를 나누는 카카오톡 상의 대화다. 별다른 구성원의 동의 없이 내부 고발 명목으로 다같이 있는 자리를 ‘까발리는’ 것은, 개인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다는 점에서 ‘논란’ 딱지를 받을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됐던 각 대화방에 있던 남성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질타를 받는 데에 항변할 말이 없다. 일단 과정이 어쨌든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쏟아지는 비판 여론과 개선 촉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그 내부 고발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내부 고발을 택한 것이라서 그렇다. 그들이 묵과할 수 없었던 그 남성 중심 커뮤니티들은, 이 정도의 악수(惡手)를 동원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스스로 변하려 하지 않을 만큼, 심각하게 게으른 것이다.

오메가패치

어느 정도냐면 이 정도 처방은 돼야 조치가 취해질 정도로.

 

단톡방 속 ‘성희롱범’들과 ‘내부고발자’의 프로파일링

대한민국에서 남성은 환경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신경 쓰며 대응하지 않아도 되게끔 커 왔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약한 이가 학급 체계에서 뒷자리로 배제된다는 걸 학창 시절에 배우고, 안 되면 되게 하자는 걸 군대에서 배웠다. 그 사이에 여성은 자연히 약하고 의지가 약한 존재로 분류되고, 나아가서는 어떻게든 자신들이 취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정의됐다. 이렇게 최소 20년을 힘의 논리로 살아온 이들에게, 살면서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 없는 젠더적 잣대를 자신의 사고에 적용한다는 건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여차하면 뭐 하나 책잡혀 ‘털리게’ 생긴 지금, 귀찮은 일 없이 살던 대로 살면서 잘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조용히 하면 된다. 그 어디로도 자신들의 대화가 빠져나가지 않게끔 멤버를 공고히 구성하고, 그 외의 다른 이가 어쩌다 리그에 편입되면 조심스럽게 천천히 동화시키거나 끝까지 쉬쉬하면 된다. 조금이라도 짜증나는 언행 앞에서는 ‘너도 어차피 똑같은 놈이잖아’라며 “후려치기”를 하거나 그냥 내쫓으면 그만이다. 사실은 굉장히 오랫동안 이 세상 전체가 그렇게 해 왔다.

그리고 다수의 논리에 함몰된 집단이 도덕적 해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그 속의 개인은 힘이 없다. 그가 혼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미쳤을 때도, 그가 실제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무력감을 느끼며 하던 대로 계속 남아 있거나, 별다른 액션 없이 홀연히 떠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들이 정당한 비판을 받을 수 있도록 외부에 ‘까발리거나’. 이것이, 원래 그런 줄 알았던 단톡방 분위기가 ‘성폭력’으로 “내부고발”되는 원리다.

 

아직 갈 길은 한참 멀어 보이지만

고발자들이 비난을 좋아해서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각자의 행동에서 옳고 그름을 한 번쯤은 따져보는 ‘성찰’을 요구할 뿐이다. 그러나 표면적인 양상과는 별개로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우리의 생활에서 당장 밀접하게 마주치고 있는 이 젠더적 의제는, 몇 번의 대자보와 질타와 처벌로는 생각보다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그들만의 판에서 게으르게 생각하고 편하게 커 온 세월은, 실로 길기만 하기 때문이다.

최규석 단톡방 성희롱 옹호 트윗 논란

어느 정도나면 ‘송곳’ 원작자 만화가님도 미처 못 피했을 정도로.

가해로 참작되는 행동을 한 남성들에게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정신보다는 그들이 여자에 관해 어떤 농담을 해야 되는지를 배우며 살아온 시간이 더 길고 굵게 여겨진다. 그러니 그들의 정서는 반성이 아닌 반발에 가까울 것이며,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어떤 추악함을 감추고 보호하기를 택할 것이다. 고발과 지적이 이어질수록, 그들은 더욱 깊숙한 장소에서 은밀하게 단단해질 것이다.

그래도 변화를 바란다면, 포기하기보다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커뮤니티를 비공개로 할 수는 있을지언정 악(惡)을 비공개로 할 수는 없음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그 분위기와 정서의 폭력에 일률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더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현명한 방향이 될 것이다. 아주 조금씩이나마 느릿하게 변화할 것을 기대하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게 ‘사생활 침해’의 누명보다 응원과 동참이 더 어울리는 이유다.

고려대학교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 사과문

그래도 아주 조금씩은 변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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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