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goes 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흔히 힘들고 지치는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혹은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서 주고받는 영어 숙어다. 1형식 문장 특유의 간결하고도 함축적인 멋이 있어서, 굉장히 많은 캘리그래피 작품이 나와 있고, 이걸 제목이나 후렴구로 채택한 노래도 이미 많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이 유명한 경구를 요즘 들어 한 사람을 보며 더욱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된 백남기 농민의 장녀로 알려진, “나물” 백도라지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나물(@EdnaM100)님 | 트위터
스스로를 “빗질하는 사람/리트윗 머신”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그는, 세간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백남기 농민의 첫째딸’일 거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을, 반도의 흔한 트위터리안이다. 그의 자기소개문(바이오) 마지막은 ‘핸드스탠딩 성공하자’라고 적혀 있는데, 핸드스탠딩이란 별게 아니고 그냥 물구나무 자세다. 그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실내 운동과 일상생활에 관심이 있고, 부친이 아프시고, 구글에 인수되는 한이 있더라도 트위터는 없어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하지만 내가 이 ‘계정’을 최근에 다른 사람들의 리트윗 전파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는, 또 하나의 ‘갑자기 어쩔 수 없이 속보를 전하기 위해 만든 피해자의 무한RT 요청용’ 계정이라고 생각했다. 내용들이 하나같이 긴급하고 절박하고 분통 터지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검찰에서 만약 아빠 돌아가시게 되면 부검을 하겠다고 하네.” “변호사님 말씀이 영장에 달린 게 '조건'이 아니고 '제한'이라고 합니다. 결국 강제집행 가능하단 얘기+일출전 일몰후(야간) 집행 가능.” “승압제 안 쓰겠다고 서명했어도 법무팀 운운하면서 부원장 지시로 다 썼어. 뭔소리야.”
그래서, ‘헉 서울대병원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제일 빨리 알려면?이분을 팔로우하고 소식을 받아봐야겠군’ 하고 팔로우를 한 다음 한 며칠 지켜보다가, 괜히 혼자서 당황했다. 이분 왜 이렇게 유쾌하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그 백남기 농민 분의 자제분 맞으신 건가? 지금 그 아버님께서는 사경을 헤매며 공권력에 대한 저항감의 마지노선을 넘을지 말지의 기로에 서 계신 걸로 아는데…
하지만 나 혼자의 우려와 아무 상관 없이 ‘나물님’은 트위터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끔은 그가 피해자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말이다. 보면 볼수록, 그것이 건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 자신의 사고방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잠시 곰곰이 되돌아봤다. 내가 지금껏 보았던 피해자들이 어땠길래, 나는 이 피해자 분의 온라인 행보를 어색하게 느끼는 걸까?
단언컨대 ‘사랑의 리퀘스트’는 최선이 아니었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권력과 악습과 시스템에 당했던 피해자들은 그저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일생을 바쳐야 했다. 그들이 자기 사연을 공론화할 방법이 없었거니와, 실제로도 큰일을 당하고 나면 기존의 일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만큼 단순하게 살아 왔다. 길거리에 큼직하고 빽빽한 글귀를 들고 나와 목청을 높이는 노인들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건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동정’하면서 한 가지 잘못된 윤리적 고정관념을 굳혔는데,?바로 ‘순진한 피해자’의 이미지다. 하도 그런 피해자만 보아 온 탓에, 이제 우리는 충분히 가엾어 보이는 사람만을 가엾어할 수 있게 됐다. 무려 15년간 방송된 ‘사랑의 리퀘스트’가 가장 선명한 사례다. 항상 어떻게 다들 그렇게 지독하게 ‘불쌍’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던 그 프로그램 말이다.
이런 식의 도움은 절대 도움이 될 수 없다. 어릴 때는 ‘그럼 저 사람 나중에 약값은 어떻게 해?’ 같은 직관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들과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더 안전한 사회, 더 실제적인 의료 복지, 더 체계적인 사법적 보호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문제는 결국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 쇼는 매주 일요일만 되면 그런 차원의 문제를 개인 간의 동정과 ARS 전화로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이게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면 뭘까?
이런 생각은 나만 하고 있던 게 아닌 모양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대신 체제를 바꿔 달라고, 법을 바꿔 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보다 더할 수 없이 구조적 모순이 개입돼 있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로는 더더욱 그런 경향이 생겼고, 그 참사가 있던 해 12월에 ‘사랑의 리퀘스트’는 종영했다. 그렇다. 세월호 이후, 체제와 사회에게 당한 피해를 개인의 ‘사랑’에 ‘리퀘스트’하는 시대는, 정말로 끝이 난 것이다.
“광광 울고 주저앉아 있어 봐, 아빠 벌써 뺏기고도 남았을 것”
그러면 이제 개인의 불쌍함을 개인에게 토로하는 것은 이제 금기인가?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두 가지 측면에서 그것은 일종의 낭비인데, 하나는 “내가 이렇게 불쌍해”만을 호소해서는 결정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 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더 궁극적으로, 우리가 남에게 불쌍하게 보이느라고 나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혹시 그런 사람 주변에 없는가? ‘나 요새 아파, 힘들어, 어려워’ 같은 토로를 하면 “넌 그래도 아프리카(더 심하면 북한) 사는 어린이들보다는 더 낫잖아! 힘내!” 같은 개소리를 하는 사람 말이다. 분하고 하찮지만, 그게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일부 인간들의 사고방식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월호 참사 앞에서 ‘교통사고도 매년 몇 건씩 난다’ 운운하는 높으신 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물’ 백도라지님의 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지난달 30일 생방송 뉴스 전화 인터뷰 직후 올린 이 트윗은, 띄어쓰기 칸마다 굳은 결의가 느껴져서, 우리 머릿속에 있는 “불쌍한 피해자”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 피해자의 모습을 ‘광광 울고 주저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면서,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굳게 선언한다. 그러지 않으면 부친의 신병을 “벌써 뺏기고도 남았을 것”이기에.
생각해 보면 그게 내가 피해자를 대하고 피해자에게 기대했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저 분하고 원통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손을 놓고 있는 모습. ‘사랑의 리퀘스트’는 이상하다고 알아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특수한 경우에서도 피해자가 반드시 그저 가엾기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초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까무러치며 꺼이꺼이 울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 역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또렷하고 냉철하고 평온해져 갔었다. 그것은 이제, 피해자가 피해를 보전받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 내지 방법이며, 그걸 지켜보는 우리 역시 그걸 지지하고 도와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삶을 찾고, 일상을 회복하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그 노력이 말이다.
이런 자세는 이제 배우고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두 번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적으며 끝맺고 싶다. 내가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 힘든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삶이 아무리 고되다 하더라도, 아니 고되면 고될수록 더더욱, 그 잃어버릴 것만 같은 행복과 일상들을 쟁취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피해를 입은 것이, 무슨 죄를 지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죄를 지었다면 면목 없이 그저 죄송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랑의 리퀘스트 시대’는 공식적으로 끝났으므로, 피해자들마저 죄송스럽고 스스로가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키고 있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 그보다는 피해를 입힌 가해자와 그 가해자를 두호하는 세상을 함께 꾸짖어 달라고 요청하며 싸워나가는 것이 더 적절하게 되었다. 피해는 저들이 내게 준 것이지 내가 저들에게서 받아 온 게 아니지 않은가, 강제로 빼앗긴 내 생활을 되찾고 말겠다, 하는 심정으로.
한때 우리는 ‘아니 피해자가 뭐 저렇게 즐겁게 잘 살아?’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던지고 지나가던 대중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기득권자들은 그런 생각에 기초해 ‘순수 유가족’ 운운하는 황당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만큼, 우리가 오랜 세월 익숙하게 보아 온 피해자들은 평생에 걸쳐 불행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피해자를 위하려면 구조와 체제를 탓해야 한다는 것을 이 사회가 알아가고 있는 지금, 백도라지 님을 보며 생각한다.?Life goes on. 그들의 삶도 계속되어야 할 텐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일일 텐데, 하고.
@EdnaM100 응원합니다. 나물님 트윗보던 초반에 좀 자제 하셔야하는거 아닌가 생각했던거 반성합니다.
? Seo miseon (@bluurain1) 2016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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