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JTBC 잘나가지?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손바닥만한 화면으로 ‘1분 다시보기’나 ‘초간단 요약클립’을 보기에 바쁜 요즘 TV 프로그램이 본방 시청률 8%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기록이다. JTBC 뉴스룸 이야기다. 이 시국에 특종 뉴스들을 패키지로 쥐고 있으니 당연히 시청률이 오르는 것 아니냐고 에누리해서 본다고 치더라도, 일정 정도 이상의 공신력과 ‘계속 보는 재미’가 보장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준의 성적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보인다.
비단 뉴스뿐만이 아니다. ‘비정상회담’, ‘썰전’, ‘말하는대로’ 등 웬만한 공중파 채널보다 더 괜찮은 쇼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곳도 바로 이곳 JTBC다. 핵심 알맹이 없이 인터넷 드립 적당히 주워 온 자막과 빠른 ‘템포’만 갖춰 주면 무조건 재미있을 거라고 믿는 요즘 예능에 비하면, 대체로 차분함과 품격을 갖춘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을 때는 확실하게 재미있는 수준급 오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JTBC에 대한 생각은 그냥 그 정도였는데, 엊그제 가족들과 함께 ‘대통령 기밀 연설문도 미리 받아 고쳐주었다’ 하는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을 보고 있다가 부모님으로부터 한 말씀씩 재밌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방송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거다.
TBC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방송은 참 잘해.
왜 아녀. 저거 제2의 TBC라고 해서 JTBC라고 한 거 아녀.
아부지 제2TBC가 아니고 JTBC에요, 라고 대꾸했더니 오히려 내게 면박 아닌 면박이 돌아왔다. “니가 몰라서 그래, 나중에 동양방송이라고 찾아봐봐. 니 애비 말이 틀린가 맞는가. 내가 JTBC 영어 이름을 왜 몰라. 근데 저게, 물론 다른 뜻들도 있겠지만, 제2의 TBC를 만든다고 해서 저렇게 붙인 것도 있다는 거여.”
아니기만 해 보라고 픽픽 비웃으며 그 자리에서 ‘동양방송’이라고 찾아봤고, 1분 만에 패배를 인정했다.
동양방송 (Tongyang Broadcasting Company, 1964~1980)
물론 나는 본 적이 없고 아마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TBC라는 방송국이 있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관심 사업으로 추진되어 1964년 12월에 TV 신호를 처음으로 송출한 곳이다. 삼성이 방송국을 하다니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당시에는 “모름지기 기업이란 어느 정도 컸으면 신문이든 방송이든 하나쯤 하는 것이 나라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대세였다고 한다. 실제로 동아방송, 서해방송 등 비슷한 민영 방송국들이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시기에 나오고 있었고.
후일담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정치를 할지 다른 걸 할지를 고민하다가 ‘정치는 좀 아닌 것 같다’ 하여 방송국을 택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토록 훌륭한 선택이었음을 우리는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아마도 그때 막 방송을 시작한 제작진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방송국은 거의 5년 넘는 시간 동안 시청률을 잡기 위해 악전고투를 한다. 생각해 보면 JTBC 처음 나온 게 2011년인데 그때만 해도 영 볼 게 없어서 ‘저게 뭐야? 봐도 되나?’ 싶었으니, 아마 동양방송도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던 JTBC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대략 2012년이었다. ‘아내의 자격’이 종편채널 드라마치고는 재미있어서 히트한 것이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묘한 평행이론이 있다. JTBC가 계승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동양방송 역시 드라마를 통해 드디어 채널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7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 드라마는 심지어 제목도 ‘아씨’였고 당대 통념에 대한 ‘막장도’도 비슷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소름 돋아도 좋은 부분.
색다른 콘텐츠와 뛰어난 뉴스라는, 똑같은 전성기
그리하여 오늘날 JTBC는 웬만한 기성 방송국 못지않게 뛰어나다. 그 탁월함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어딘가 살짝 다르면서 세련된 예능, 꾸준히 안정적으로 나와 주는 드라마 콘텐츠(‘유나의 거리’, ‘송곳’, ‘밀회’를 기억하시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JTBC 뉴스’. 놀랍게도, 이 세 가지 특징은 JTBC의 것이기도 하지만, ‘제1TBC’인?동양방송이 전성기 시절에 누린 것이기도 했다.
예능을 보자면, 대표적으로 ‘쇼쇼쇼’라는 쇼가 있었다. 내용이나 구성이 당대 영미권 TV의 스튜디오 라이브 쇼와 매우 흡사해서, 무대의 스케일로 승부하려는 경향을 띠던 여타 방송사와 차별점을 두며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연속물 콘텐츠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이순재, 강부자, 여운계 등 불후의 스타들이 집결해 있었고, 최신 만화영화나 ‘외화’도 꽤 소개해 왔다. ‘600만불의 사나이’, ‘원더우먼’, ‘짱가의 우주전쟁’이 모두 TBC의 공적이라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뉴스가 남다르고 주목받는다’라는 점이 오늘에 와서 절묘하게 겹친다. 제2TBC에 ‘뉴스룸’이 있다면 TBC에는 ‘TBC석간’이라는 저녁 뉴스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지금의 뉴스룸이 기업과 정부에 비판적 논조를 가져가면서 ‘앵커브리핑’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TBC 석간도 그랬다. 국영방송이 제대로 못 하던 군사정권 비판을 서슴지 않고, ‘앵커’라는 표현과 뉴스 스튜디오 체제를 도입하면서, 지금의 TV 뉴스 형식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것이 바로 TBC였다.
1980년에는 정부가 통폐합시켜서 없어졌는데… 과연 이번엔?
이처럼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던 방송국이 돌연 ‘시즌1’을 끝내게 된 경위가 참 황당하다. 이제 막 정권을 잡아가던 전두환이 1980년 세밑에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이라는 것을 발의시킨 것이다.?졸지에 팀이 공중 분해되거나 KBS 밑으로 들어가게 생긴 제작진들은 마지막 방송을 내보내고, 회사 옥상에 올라가 깃발을 내리는 동안 울먹였다고 한다. 지금 보아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긴 하다.?‘통제하기 귀찮으니까 일단 머릿수를 줄인다’라는 발상이었던 것을, 당시 사람들 누구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일까? 대견하고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쩐지 불안하다.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감히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듯 공고해 보이던 정부 수반의 권위에 대해 연일 특종을 내보내고 있는 ‘뉴스룸’이, 어딘가에서 ‘나는 경북이다’ 발언을 하고 다니는 개그맨의 토크 콘서트 쇼가, 그처럼 수없이 많은 부문에서 지금까지의 행보가 제1TBC와 너무나 겹치는 ‘제2TBC’가 말이다.
글쎄,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JTBC라는 채널 자체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유로 언론자유 침해 논란을 빚어 가면서 강력하게 추진되어 탄생한 것이고, 일설에 따르면 사실상 홍석현 사장의 최우선 사업이라고도 하는 만큼, 그 예전의 황망한 전철을 그대로 밟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제는 꽃길만 걸으리라고 낙관하기도 어렵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모두 이젠 알지 않는가. 지금 이 반도는 불법이며 퇴행 등을 훌쩍 넘어 ‘과연 우리의 상식이 현실에서 통하긴 하는가’를 의심해야 하는 곳이라는 걸 말이다. 하필이면 마침, 바로 이 방송국이 보도해 준 뉴스를 보며 받게 된 느낌 바로 그대로.
내 생각이냐고? 아니, 우리 아버지의 생각이다. 내가 휴대폰 검색 찬스 1분만에 패배를 인정하며 맞장구를 치자마자, 당신은 준비해 둔 듯한 코멘트를 덧붙여 이 주제를 정리하고 다시 TV를 응시했다.
아 진짜 JTBC가 TBC에서 온 거네요.
TBC는 전두환 눈 밖에 나서 그날로 망했는디… 저거는 이제 어떻게 될랑가 그걸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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