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야죠

“사회부적응자”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사회부적응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위하여

누구나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나만 유난스러운 건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어쩐지 자기만 동떨어져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고, 다들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 한 명만 참지 못하는 듯한  순간들이 있지요. 혹은, 당신이 사회의 어떤 관습과 행태에 대한 순응을 소극적으로 또는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모두 ‘부적응자’라고 묶어 낙인찍어 왔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뜻을 담아 못 어울리는 사람, 겉도는 사람으로 치부해 왔지요. 그러나 사회부적응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사회부적응자는 우리의 가족, 동네 친구, 학교 선후배, 직장의 부하, 상사, 동기, 혹은 바로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아래의 자료에서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참조하십시오.

 

“저는 낯을 가립니다. 그건 단지 신중할 뿐이에요.” ― 대학생 G씨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그래서 가끔 천사 같은 친구들이 소개팅 제안을 하지만 거의 거절하죠. 처음 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은 제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그 정도 일이 뭐가 어렵냐고 너 혹시 대인기피증이냐고 타박하지만, 슬프게도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토론식 수업도 그래요. 시험을 아무리 잘 쳐도 수업 과정에 활발히 참여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학점을 안 줄 것이라는 교수님. 휴. 토론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일면식도 없는 60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손을 들고 말하는 것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일이에요. 손을 들어야 할 타이밍도 모르겠고 지금 내가 말해도 되는 것인가 싶고 모두들 나만 쳐다보고 내 입만 바라보고 있는 그 아찔함이란! 그래서 지금껏 딱 한 번 말했네요. 드랍 해야 하나.

아이작 뉴턴

아이작 뉴턴은 전형적인 낯가림형 사회부적응자였다. 그가 영국 의회 의원이었을 때 그는 딱 한 번 회의 중 발언을 했는데, 밖이 추우니 문을 좀 닫자는 것이었다.

저도 인정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잘 하는 것은 분명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낯을 가리는 사람을 사회부적응자라고 매도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마음이 없는 것으로 차별하여 생각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건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것에 조금 더 신중을 기하고 고민을 하는 것뿐입니다. 만약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도와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성격과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나는 내 사생활을 오픈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 졸업생 H씨

저는 학교 다닐 때 기숙사에 살았는데, 기숙사비 할인 때문에 1학년 때부터 기숙사 조교를 했었어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조교 업무가 힘든 건 아니었어요. 점호하고, 돌아가면서 사무실 당직 서고, 그 정도였으니까. 사실은 기숙사 담당 선생님들이 힘들었어요. 제 사생활을 이것저것 캐묻곤 하셨거든요. 남자친구는 있니, 사생 중에 마음에 드는 남자는 없니 하는 것부터 시험 기간에 공부하고 있는데도 괜히 뭐 하냐고 전화하고, 걸핏하면 어제는 뭐 했니… 내일은 뭐 할 거니…

초반에는 부담스러워서 적당히 얼버무려 대답해 드렸죠. 그랬더니 한 선생님이 대놓고 사회생활 좀 하라고 나무라시더군요. 당신들이 어른이라고 내가 어려워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다 좋자고 하는 일인데, 그 정도 맞장구도 못 쳐 주냐구요. 이것도 업무의 연장이라면서요. 어린 마음에 뭘 알겠어요. 그 후로 방을 뺄 때까지 물으면 묻는 대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거절도 못 하고 끌려다녔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깝죠. ‘장단 맞춰 드리느라’ 어그러진 내 생활들…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니체는 대표적인 사생활형 사회부적응자였다. 그의 연애사는 한 여인에게 세 번 청혼하여 실패한 이후 독신으로 지낸 것만이 알려져 있을 뿐, 속설로 떠도는 친여동생과의 근친 연애 등의 의혹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물론 같이 기숙사 일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조교에게 관심 갖고 친해지려 하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전 그냥 기숙사비를 저렴하게 해 준다길래 조교를 한 거였고 굳이 친목을 다지고 싶지는 않았어요. 약속된 업무 외의 일들을 굳이 오픈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친해진 것도 아니었어요. 졸업 이후로는 서로 전혀 연락하지 않았으니까. 저 다음으로 그곳 기숙사 조교가 되었을 사회비적응자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나는 회식이 싫습니다. 제게 그 시간은 그냥 끔찍해요.” ― 직장인 C씨

우리 회사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은 이 회사, 그 중에서도 제가 몸담고 있는 이 파트는 회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체 회식부터 번개성 회식까지 일만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서 술 한 잔 하는 모임이 다른 파트에 비해 ‘굉장히’ 잦은 편이에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회사에서 12시간 내내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랑 또 밖에서 술 한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얼굴을 보는 게 저는 넌더리가 납니다.

오히려 사회생활 잘 하시는 다른 분들이 더 신기합니다. 일하면서도 얼굴 붉히는 일이 잦은데, 퇴근 후에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끔찍하지 않을 수 있나요? 하지만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주변 친구들은 회식을 빌미로 일찍 퇴근하는 게 어디냐고 합니다. 아니면 ‘회사 돈으로 비싼 밥 먹으니 좋겠다’, ‘원래 다 그런 자리를 가지면서 친해지는 거지 너가 아직 후배라서 모르는 거다’ 정도가 고작입니다.

관우

관우는 대표적인 비사교형 사회부적응자였다. 계한보신찬은 그가 “사람들과 교제하거나 대응함에 있어서는 무례하고, 아울러 흉악한 일을 초래”하였다고 적고 있다.

조금만 투덜댈 뿐인데도, 제가 유별나게 구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도 올해는 나름대로 노력한답시고 전체 회식은 열외 없이 다 나갔습니다. 술도 적당히 마시면서 동기나 선배님들과 꽤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번 고과에서 한방 먹었습니다. “조직 문화 융합의 적극성이 부족함!” 제가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앞장서서 회식 번개도 한 판 뛰고 꽐라도 한 번씩 되어 드리면 모자란 “적극성”이 채워진답니까? 부탁인데 회사에선 일만 했으면 좋겠네요!

 

“이것은 예의범절이 아니야. 인턴과 정사원 사이의 개 같은 계급일 뿐이지.” ― 인턴 L씨

사회생활 안 해봤죠? 윗분들께 공지라는 말 쓰는 거 아니에요.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세요. 그리고 대답할 땐 짧게, ‘네’라고만 하시고요.

인턴으로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 제가 배운 첫 사회생활이에요. 전 “공지”라는 말을 쓰는 데도 계급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며 “네네”라고 답하는 게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걸 배운 셈이죠. 생전 처음으로. 그렇게 회사님은 미숙한 인턴인 제게 대~단한 사회생활(이라고 불리는 계급문화)을 하나씩 알려주셨어요. 덕분에 한동안 이름만 불리면 이번엔 또 무슨 지적을 당할까 노심초사하거나 선배의 메신저가 갑자기 깜빡이면 혼날 것을 예상하고 미리 겁먹고 대기해야 했죠.

그럭저럭 적응해가던 어느 날 한 선배가 제 이름을 부르셨겠지요. 다른 팀에 근무하는, 얼굴도 모르는 직원님께 ‘~님’이라고 메신저를 보냈었는데, “어떻게 이름으로 부를 수 있냐” 하고 진심으로 어이없어하시더라구요. 최소한 “선배님”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또 배운 거죠. 인턴 따위가 감히 직원님의 존함을 언급하는 게 그렇~~게 어이없는 일인지 미처 생각도 못 했지 뭐예요.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선배님께 사죄하면서 생각했어요. ‘차라리 이름이 그냥 선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맹자

맹자는 대표적인 계급탈피형 사회부적응자였다. 유교의 예(禮)를 확립한 ‘맹자’ 1권에서 맹자는 군왕의 질문에 대해 “어찌 그런 하찮은 것을 묻느냐” 하고 핀잔을 준다.

사실 이번 인턴은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지적을 받으면 받는 대로 모니터 옆구리에 붙인 포스트잇에 다 적어 놓고 사회생활 잘 하는 인재가 돼 보려고, 잘 해보려고 노력도 해봤는데… 회사가 원하는 예절은 제 상식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고차원의 것이더라구요. 인턴은 이 계급사회의 최하위층에 속해있었고요. 값진 배움을 얻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정상적으로 살려면 이렇게, 뜻 깊~은 가르침을 주는 사회생활 같은 건 다신 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모든 인사가 반드시 필요한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구)새내기 E씨

제가 유별난 것일 수도 있는데 저는 아주 친하지 않으면 인사를 잘 안 하는 편이거든요. 인사를 제외하고서라도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 거는 것 자체가 좀 에너지를 빼앗긴다고 해야 하나. 안 친한데 굳이 가서 인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물론 서로 친할 땐 얘기가 다르죠. 친한 동기나 선배님이나 동생들은 멀리서도 크게 이름 부르면서 쫓아가서 인사하고 밥 먹었냐고 물어보고, 안 먹다 하면 밥도 같이 먹고 얘기하고. 그건 당연하죠. 그런데 안 친한 사람들에게도 그렇게까지 아는 체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서 예전에 조모임으로 엮였던 사람들은 솔직히 좀 껄끄럽잖아요. 혹은 학과 선배인데 저번 학기에 수업 한 번 같이 들은 사이 역시 좀 서먹하지 않나요? 인사하기도 그렇고 인사 안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저는 저 멀리 계신 선배님께는 오지랖 부리지 않고 가만히 모르는 척 지나갔거든요. 그런데 선배님들 생각은 좀 다르신 것 같더라구요. 얼마 전에는 15학번 선배에게 인사하기가 그렇게 싫으냐면서, 10학번 선배가, 방금 전필 마친 16학번 동기들을 붙잡아 놓은 적이 있어요. 무려 한 시간 동안.

예수

예수는 대표적인 예의탈피형 사회부적응자였다. 그는 당시 풍습상 천대받던 어린이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을 파격적으로 허락하는가 하면, 주변 사회에서 존경받던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허례허식을 갖추지 않았다.

저는 학교를 몇 번 바꾼 사람이라서 이젠 그 선배님들이 저보다 어리거든요. 그런데 저 때문에 다른 동기들까지 혼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불편했어요. 교수님이나 학장님께 인사를 생략했어도 이 정도로 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선배님”이 보이자마자 앞으로 가서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드려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하구요. 물론 머리카락에 가려 선배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요. 뭐 어쩌겠어요, 친하건 말건 나이가 어떻건 그렇게 해 드려야죠. 선배님들께서 그렇게나 인사가 받고들 싶으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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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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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디자이너. 10분에 한 번씩 이직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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