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차분히 멸망을 준비하고 있다

사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10학번이 아직 캠퍼스에 없던 시절

알바를 달고 살았다. 정말 오만가지 알바를 다 했다. 그래도 생활비가 빠듯했다. 그러다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이때는 고정적인 알바를 할 수가 없었다. 고시원 총무 알바를 시작했다. 부족한 생활비가 채워지지 않았다. 정말 돈이 없었다. 굶고 굶다 운 적도 있다. 배고픔도 배고픔이지만 비참함이 더 컸다. 이를테면 커피를 마시러 나갈 수 없을때가 그랬다.

넓디넓은 캠퍼스에는 약속 잡을 장소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한 장소로 커피숍을 택했다. 그곳은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가장 만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말했듯, 저녁 밥값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정을 설명하자면 될 일이다. 친구들은 그깟 커피 한잔이 대수겠냐고 사준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싫었다. 그냥 그런 상황 자체가 모두 싫었다.

나는 고시원에서 섬처럼 지냈다. 사람들과 단절된 채 둥둥 떠다녔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두어평짜리 방, 사람 몸 하나 뉘이기 힘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들 섬처럼 지냈다. 당장 여기서 꺼내줄 수 있는 건, 고시에 합격을 하든, 그걸 때려치고 회사에 취직하든 돈을 버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쉽게 이루어 질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섬에 나는 4년 넘게 갇혀있었다.

해외에서도 ''Goshiwon" 이라고 소개되는 그곳.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운 좋게 섬에서 탈출하여 회사원이 되었다. 이제는 커피를 마신다. 맛있는 커피가 뭔지도 안다. 합정동 근처 어느 카페가 그렇다. 정말 맛있다. 대신 자주 못 간다. 좋은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동네 앞 1,500원짜리 커피를 먹는다. 합정동의 그곳처럼 그윽한 향은 없다. 하지만 아침마다 먹는다. 그걸 먹어야 비로소 몸이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그려면 누군가 말한다. 니가 먹는 커피 값을 한 달간 모은다면 몇만 원은 될거라고. 그게 1년이면 적어도 한달치 월세가 넘을건데, 아깝지 않냐고 말이다. 하지만 바꿔 말해보자. 그렇게 아껴봐야 고작 한달치 월세다. 매일 아침의 행복을 포기한 댓가가 겨우 이렇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다. 1,500원짜리 커피에도 이러는데, 5,000원이 넘어가는 스타벅스에 갔었다면 아마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애들은 참 유복하다는 말을 쉽게 듣는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한 손에는 커피. 대체 무엇이 부족하냐고 말한다. 가난을 이기려 물배를 채우던 시절도 모르면서, 요즘 굶는 사람이 대체 어딨냐고 소리친다. 우리 때보다 이모저모 훨신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평균값이 다르다고 해서 뒤쳐짐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분명히, 시대는 '유복'하다지만

끼니를 걸렀던 당신들의 삶이 우리보다 나았단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빈곤은 과거와는 다른 양태로 찾아온다는 거다. 내일을 포기하는 일이 바로 그렇다. 내집 마련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이것저것 포기한다. 슬픈 것은, 그렇게 미래를 포기하더라도 5천원짜리 커피를 상상할 수 없는 청년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는 것이다.

너무 쉽게 포기하는거 아니냐고? 호봉제의 세상에서 ‘나이 먹음’을 적당한 호사로 누렸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평생 오르지 않는 비정규직의 임금체계를 각오해야 한다. 노력 끝에 정규직으로 취업해도 다를 것은 없다. 성과연봉제니 뭐니 하는 단어들 때문에 마흔 중반을 넘지 못할 거란 것을 이미 모두 각오하고 있다.

어떤 외침.

지금의 가난이 당신들의 경험으로 치환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하긴,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이미 당신의 결론은 정해졌고, 돈 없다, 힘들다 소리치는 목소리는 그냥 약한 탓이기 때문일 텐데. 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우리는 지금을 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꽉 막힌 미래의 과업들을 포기하고 나니 감히 스타벅스 커피도 마실 수 있더라.

우리는 사치하고 있지 않다. 대신 차분하게 멸망을 준비하고 있다. 꽤 예전에 결심한 일인데 당신들은 이제야 그 위기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애 낳으라’는 각종 윽박이 들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인구출산을 빌미로 교섭을 하고 싶으면 요구조건에 맞는 걸 가져와야다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고스펙 미혼 여성을 어쩌겠다고?
어쩌라고.

열심히 잘 분석하기 바란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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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
(전) 직썰 에디터. 인디레이블이자 음악유통사 ‘QuidleSound’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