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나는 ‘좆소기업’에 다닙니다

앞으로 아주 행복하게 다닐 예정인댸여~

엄마는 친척들에게 회사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정말 까먹어서서 그랬어"
나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이해했다.
처음에는 나도 낯설어서
버벅거리며 회사 이름을 말했으니까.

친구들에게 취업턱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장소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우리 회사는 강남, 판교, 종로가 아니라
정말 뜬금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어서 경력 쌓아서, 좋은 곳으로 이직해"
친구들은 나를 보고 위로를 건냈다.

우리 회사?

임직원 수 30명
인수인계 2일
점심식대 지원 없음,
성과급 없음
예상보다 더 적은 연봉

그래요, 나는 중소기업에 취업했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직무를 한다

일을 잘 해서 회사에서 귀여움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내 명함이 자랑스러웠지만, 위로하는 사람들 앞에서 명함을 꺼내기가 어쩐지 머쓱해졌다. 덕분에 내 명함은 회사 사물함에 얌전히 앉아있다.

아아,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배웠는데요

하지만 모르는 말씀. 회사에는 분명 귀천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뭔가 위로하고 조언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극복해야할 고난과 역경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내 꿈은 이 일을 하는 거였고, 나는 이미 꿈을 이뤘다고 대답했다가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젊은 애가 그렇게 현실에 안주하냐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다.

내가 해온 모든 노력이 '좆소'라는 이름에 갇혀 땅에 처박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우리 회사가 ‘숨겨둔 신의 직장’ 은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걱정이 어느 정도는 날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가끔은 한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거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알바의 위치에서 행사장 뒷편에 앉아있던 내가 이제는 담당자라는 명함을 달고 무대 옆에 서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말한다. 어서 무대 위로 올라가라고, 더 크고 높은 곳으로 날아 오르라고 닥달한다.

아무도 나에게 이 기업을 고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 회사 면접 날, 나는 면접에서 처음으로 내가 다녀온 봉사활동에 대한 질문을 들었다. 다른 회사에서는 듣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리고는 어떤 글을 썼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신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원하던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첫 출근 이후 단 한 번도 아침에 회사에 가기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좋은 사람들과 적성에 맞는 일을 한다. 그때 내게 질문을 건낸 팀장님은 실수를 하면 덮어주고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해주는 사수가 되었다.

그래요, 나는 '좆소기업'에 다닙니다

아주 평온하고 행복하게
앞으로도 잘 다닐 예정입니다.

아 물론, 위로나 조언은 사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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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미

정우미

Twenties Timeline 에디터. 낯선 곳에서 맥주를 마실 때 가장 행복합니다.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