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한 청년, 오혁.

밴드 ‘혁오(hyukoh)’의 오혁이 노래하는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들.

귀에 꽂힌 요망한 목소리

전형적인 허스키함으로 살을 에진 않는다. 그렇다고 살결이 도드라질 정도로 부드럽지도 않다. 그는 딱 중간 지점에서 노는 그런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공허하고 허무한 가사를 아무도 듣지 않는 독백인양 늘어놓는다. 기타, 베이스, 드럼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 듯한 공간감을 지각하게 하는 톤과 유려한 진행으로 청자가 위치한 공간이 어디든 간에 몽롱하게 한다.

그로써 그는 이제는 흔하디흔해 빠져버린, 들으면 오히려 진저리가 나는 ‘청춘’이란 꼬리표가 붙는 가장 찬란하면서도 가장 힘든 지금의 20대들에게 잠시라도 숨 막히는 현실에서 떠나 공중을 여유롭게 부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 있다. 아니, 사실 정확히 따지자면, 작자들은 그 누구도 위로할 생각이 그다지 없었고, 우리가 그에게 일방적으로 위로를 구한 셈이 되어버린다.

이쯤에서 '그'를 소개한다. 지난해 11월, EP 앨범 [20]과 “위잉위잉”으로 어쩌다 ‘떠버린’ 밴드 혁오(hyukoh)의 보컬이자 리더인 오혁이다.

혁오밴드 vogue girl

혁오밴드 ⓒvogue girl

밴드 '혁오'는 보컬 오혁의 이름을 뒤집어서 이름이 지어졌다. 본래 지난해 4~5월에 멤버들과 밴드를 결성하기 전까지는 오혁만이 원맨밴드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혁오는 보컬 오혁의 영향력이 큰 팀이다. 다른 멤버들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 계기도 순전히 오혁의 목소리가 좋아서였다고 한다. 실제로도 데뷔 앨범 [20]에는 드럼을 치는 이인우만이 관여했으며, 나머지 멤버인 기타를 치는 임현제와 베이스를 치는 임동건은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 멤버는 개인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임동건은 ‘조선 소울’ 한영애 밴드에서 세션을, 최현제는 훵키 밴드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과 레게 밴드 윈디 시티(Windy City)로 알려진 드러머 겸 보컬인 김반장과 같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인우는 힙합 프로듀싱을 하고 있다. 개인 활동에서도, 각종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은 자신들을 장르와 같은 어떤 틀에 가둬두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의 페이보릿 아티스트 리스트에는 드웰레(Dwele), 디앤젤로(D’Angelo), 더 위켄드(The Weeknd)와 같은 록 아티스트가 아닌 정통한, 혹은 트렌디한 알앤비 아티스트들도 있다.

 

노랫말 하나, <위잉위잉>

오혁은 '혁오'의 첫 앨범인 [20]을 각각 19살, 20살, 21살에 쓴 곡들로 구성했다. 모든 곡은 갓 20대가 된 사람의 감정에 주목하고 있으며, 각 곡에서 드러나는 침잠해 있는 분위기, 감정, 태도는 앨범 내내 일관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앨범을 통해 뿜어내는 외로움, 허무함, 허탈함과 같은 감정의 근원을 한국의 일반적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찾기에는 조금 낯설다. 이 감정의 정체는 태생적 한계를 넘어 그것에 오랜 기간 속해온 세대로부터 탈피하고, 새로운 세대로 접어들었음을 인지하게 되는 상황을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날 것에 가깝다.

이런 색다름에 대한 이유는 20살 이전까지의 시간을 모두 외국에서 보내고, 스물이 되어서야 한국에 갓 첫발을 들인 오혁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사연 덕분에 듣는 이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향수나, 새롭게 접속한 20대에 들이닥친 ‘자유’로 인해 짜릿함보다 어떤 텐션이 완벽히 풀려버린, 무늬만 청년인 '소년'의 상태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단연 “위잉위잉”이다.

그림1

20대가 되면 머지않은 기한 내에 ‘잉여’의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 시간은 공강이거나, 계절의 시작과 찾아온 방학이 될 수도 있으며, 아르바이트와 같은 경제 활동 사이사이에 뜨는 공백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위잉위잉”에서 그런 시간을 보냈던, 보내고 있는, 혹은 앞으로 보낼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과 그에서 오는 일종의 박탈감을 발견한다. 뭔가 대단할 줄만 알았던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별 볼 일 없기만 하다는 것을 계속 곱씹으면서.

“위잉위잉”의 가사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체계 안에서 발맞춰 가보려 하지만, 아직 이 세계에 본격적으로 적응하기에는 여전히 어린 오혁, 혹은 우리의 모습이 있다. 인생 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삶의 방식에 있어 획일적인 한국 사회에서 뭔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려 하는 어떤 모습이라고 확장시켜 바라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위잉위잉”은 그런 사람들이 대면하게 되는 반박에 대응하고자 움츠러든 채로 취하는 자조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여기에 올해 1월에 발표된 “Panda Bear”에서 오혁은 이에 비해 훨씬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노랫말 둘, <Panda 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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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경제 성장률, 좁아지는 취업의 문틈, 기성세대들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현재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버티는 것조차 힘든 시대를 겪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며 자존감을 유지하려 하고, 혹은 생존을 위해 사회의 권좌에 앉아 있는 기성세대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고까지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무한경쟁시대에서 다른 사람과는 발맞춰 걷지 못하게 될 것은 물론, 거센 풍파를 견뎌내는 것조차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혁오는 이런 풍경 앞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에 대해 정의하거나 말하기를 거부하고, 또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듣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판다 베어라는 세상에서 가장 의욕 없는 동물을 곡의 테마로 삼아 작위적으로 소통하는 이들에 대해 꼬집으면서 동시에 난 귀찮으니 내버려둬 달라는 식이다.

동시에 오혁은 그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난 내 방식이 있다고. 그는 어떤 프레임에 맞춰 삶을 꾸려나가며 외로움과 고독함, 그 외의 여러 혼자만의 감정을 쌓아두기보다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충실하고, 또 그것을 예술로써 끊임없이 분출해내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한 오혁 내면의 감정들은 지난 3월 말에 발표된 아메바컬처(Amoebaculture)의 프라이머리(Primary)와 함께한 콜라보 작품 [Lucky You!]에도 4곡에 걸쳐 이리저리 뒤엉킨 채로 드러나 있다. 특히 [Lucky You!]의 경우에는 평소의 혁오의 음악과는 다르게 좀 더 어반하고 재지한, 때로는 레트로하기도 한 음악적 색채도 주목할 만하다.

 

요망한 청년, 오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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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해도 이 밴드에 귀를 기울게 만든 것은 오혁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허스키한 '애매한' 보이스다(오혁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애매함 그 자체를 좋아한다고 했다).

오혁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삶의 방식을 가져가는지보다 단순히 자신을 자극하는 '소리' 위주로 감상에 임했을 수도 있겠다. 설령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하더라도 나쁠 것은 없다. 곡 전반에 깔려 있는, 오혁 내면을 그린 감정을 감상하며 개인이 파편화된 시대에서 작위적으로 변모한 타인과의 소통으로 축적된 외로움의 감정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기분을 은연중에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면에 자리 잡은 외로움이란 감정을 해소하고 싶다면 앞으로도 혁오밴드, 그리고 오혁의 음악을 계속해서 주목하길 바란다. 그들이 딱히 ‘위로’라는 의도를 두고 음악을 하진 않는 것 같아서 다음에도 또 똑같이 위로받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이 요망한 청년이 그려낼 또 다른 모습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지 않겠는가.

 


 

Bonus _

오혁은 음악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아트워크와 같은 포스트 프로덕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작품이 나올 때마다 꽤 많은 뮤직비디오를 공개하고 있으며, 아트워크의 경우에는 학교 선배인 현대미술인 노성호(NEMONAN)와 함께하고 있다 (그는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혁오로는 데뷔하기 전에 김동희 작가가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과 창전동 일대의 존재하지만, 미처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다섯 곳의 장소를 찾아 개방한 프로젝트 <나열된 계층의 집>의 공간 중 한 곳에서 사운드로 공간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적도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이들의 활동을 즐겨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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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