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Veggies ① 채식요? 그냥 하는 거죠

채식인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

진료는 의사에게 채식은 채식주의자들에게

못 먹는 게 없는 허 모 에디터(23세). 나물 반찬 풀 반찬 고기 반찬 생선 반찬 뭐든 가리지 않고 웬만한 건 다 잘 먹는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던 어느 날,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게 된다. 거기서 보게 된, 원래는 동물이었던, 스툴에 갇혀 괴로워하던 ‘고기’들을 보고 허 에디터는 채식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 예고편 일부

이거 돼지 나오는 영화 맞지요…? ⓒ시네마달

근데 내가 고기를 끊을 수 있을까? 하루라도 고기 없으면 못 사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식탁에 풀밭만 있으면 어쩐지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식사 중에서라도 고기를 덜 먹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응 우리 오늘 점심? 내가…
아, 돼지고기 김치찜 먹고 싶다고? 아, 응…”

차마 채식을 한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괜히 유난 떤다는 눈빛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왜 채식을 하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게. 고기들이 불쌍해서? 생각 이상으로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 일단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채식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전화번호부를 넘겨 가며 확인해도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마침 지나가던 동료 황 모 에디터(23세)가 말을 걸었다. “내 동기 중에 채식 엄청 열심히 하는 애 있는데, 연락해 볼래?” 바로 번호를 받아 연락해 보았다. 다양한 채식주의자들과의 만남, ‘Meet the Veggies’ 시리즈의 첫 인터뷰이는 그렇게 섭외되었다. 가족들과 다함께 십 년 넘게 채식을 해 왔다는 최가은 씨 (가명, 23세)

네이버 채식주의자 종류 검색 결과

그녀는 락토 채식주의자에 해당한다

 

일단 저희 집이 채식을 해서요

자인

간단하게 자기소개랑, 채식하시는 이유를 여쭤보고 싶어요.

가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채식은, 아버지께서 시작하셔서 온 가족이 다 따라하게 된 케이스예요. 열 살 때부터?

자인

오래되셨네요. 아버지께서는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신 건가요?

가은

저희 집이 명상 같은 걸 해요. 보통 명상이랑 채식이 같이 가더라고요.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인

가족 중 한 명 정도는 “난 고기 먹을 건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어요.

가은

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만, 오빠 같은 경우는 군대를 가야 해서. 거기서는 아무래도 그런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갔다 와서 시작했어요.

군대에서 채식이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게 맛있어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아 저 잠시 속좀 차리고 올게요 ⓒfoodnjoy

군대에서 채식이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게 맛있어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foodnjoy

자인

가은씨는요?

가은

그때는 좀 어린 나이여서, 자연스럽게 따라한 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 몰래 한두 번 고기를 먹기도 했어요. (웃음) 그러다가 습관이 든 다음부터는 급식 대신 도시락 싸서 다닐 정도로 지켜왔어요.

자인

아휴 피곤하셨겠다.

가은

그래서 대학 와서는 좀 편했어요. 어머니가 해 주신 반찬을 먹거나…? 주변에 ‘러빙헛’ 같은 채식 식당으로 가거나.

자인

러빙헛은 어떤 곳이에요?

가은

비건이고, 오신채 사용을 지양해요. 메뉴도 많아서 좋아요. 거기서 주는 뚝배기 특히 좋아하고요.

자인

사실 채식 메뉴라고 하면 그렇게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는 않거든요.

흥미 있으시면 가 보세요 ⓒ러빙헛

흥미 있으시면 가 보세요 ⓒ러빙헛

가은

친구들도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가면 다들 놀라죠. 짬뽕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냐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해물도 고기도 안 들어가거든요. 콩스테이크나 콩까스 같은 것도 반응이 좋았어요. ‘종종 자기 혼자서도 간다’라는 사람도 생기고.

자인

다니시는 학교에 채식 메뉴를 파는 식당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거긴 어때요?

가은

아, 이용해 봤어요. 근데 거기 두부스테이크에는 계란이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우유만 먹거든요.

자인

채식도 구분히 굉장히 세세하네요. 혹시 우유만 드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가은

우유를 짤 때도 원래는 자연스럽게 짜야 하는데, 요즘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피고름까지 짠다고 해요. 그래서 안 먹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인

아무래도 그렇죠.

가은

그래도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하는 편이고. 비슷한 맥락에서 동물성 제품, 가죽 같은 것도 안 쓰고 있어요. 정리하면, 지향은 비건이지만,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있는 편.

비건 = 고기는 물론 해산물이나 달걀, 우유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 유형.

 

근데 저는 계속 이렇게 살았어요

자인

‘치킨 안 먹고 싶어?’ 같은 말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세요?

가은

그냥 별로 안 먹고 싶다고 말하고 끝내는 편이에요. 너무 많이 들어서… 중학교 때부터 들어 왔던 말이니까.

자인

진짜로 안 드시고 싶으세요? (집요)

가은

(웃음) 처음엔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가 역해진다고 해야 하나? 냄새가 비리게 느껴져요. 그래서 저절로 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인

식성이 달라지셨구나.

가은

그런 편이죠. 그리고 다른 대체 식품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빵을 좋아하는 편인데, 굳이 계란이 들어간 빵을 먹지 않더라도 비건 베이커리 같은 게 서울에 몇 군데 있으니까 그런 곳을 이용한다든지 해서요.

신촌 더브레드블루

달걀도 우유도 버터도 없이 괜찮은 빵을 만들어내는 마법의 베이커리. 신촌에 있다

자인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면, 주인공인 감독과 남편, 그 아들이 나와요. 아이가 어린 편인데, 처음엔 채식을 꺼려하던 남편이 ‘얘는 성장기인데 고기 안 먹이고 어떡할 거냐’라는 이야기를 해요.

가은

흔히 채식을 한다 하면 ‘야채를 먹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세요. 그런 게 아닌데. 근데 (채식을 해도) 밸런스를 맞춰서 하는 게 필요해요. ‘샐러드만’ 먹는 건 좀 아닌 거죠. 뭐든 그렇겠지만, ‘잘’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일부

참고로 이 어린이는 밸런스 있는 채식으로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시네마달

자인

집에서 드시는 식단이 궁금해요.

가은

백미는 잘 안 먹어요. 주로 잡곡 등 많이 섞어서 먹고, 두부나 콩이나 버섯은 꼭 하나 있었고.

자인

국물은 어떻게 우리나요?

가은

버섯을 넣거나, 다시마 같은 걸로 육수를 내요. 아니면 야채 육수를 내요. 파를 넣거나 해서.

자인

혹시 김치도 채식에 맞춰서…?

가은

네, 따로 담가요. 멸치 대신에 과일을 넣거나… 육수 낼 때 표고 버섯이랑 양파, 무, 사과, 배 등을 함께 넣어서 끓여요. 호박도 삶아 넣고. 마늘이랑 생강 넣고. 그래서 밖에서는 김치를 먹고 싶어도 힘들어요.

자인

확실히 힘드네요. 채식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어떤 게 있으세요?

ⓒM25

ⓒM25

가은

회식이 정말 힘들어요. 고깃집을 가면, 냄새도 싫거니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미안해하니까 오히려 불편한 거예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서로 불편하고.

자인

아이고…

가은

무엇보다, 가게에 가서 뭐 빼달라고 하면 좀 싫게 생각하시기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거 다 빼면 뭐 먹냐고 하시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채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자인

맞아요. 진짜 고기를 빼면 선택지가 너무 없어져요.

가은

아, 불편한 거 하나 더. 친구 중에서는 고기 안 먹는다고 하면 ‘불쌍하다’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어요.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따박따박 따지기에도 좀 애매하고…

 

채식을 계속 할 거냐고요? 네 그럼요

자인

아는 분 중에 알레르기 때문에 고기를 아예 못 드시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회식 때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넌 술도 고기도 못 먹으면 사회 생활 못 하겠다”라고. 왜 이런 (고기나 술 같은) 걸로 내 사회 생활을 평가받아야 하는 걸까 생각하곤 해요.

가은

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나중에 회사 가서 회식 어떻게 할 거냐… 걱정해주는 말이긴 한데, 사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배려가 부족한 거잖아요? 고기를 안 먹는다고 못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자인

아예 채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없는 느낌.

인도 채식인들을 위한 표식. 각각 채식불가(빨강), 채식가능(초록), 계란함유(갈색)를 의미.

인도 채식인들을 위한 표식. 각각 채식불가(빨강), 채식가능(초록), 계란함유(갈색)를 의미.

가은

네. 그리고 물어봐도… ‘내가 채식하니까 다른 데 가자’라고 말하기가 좀 그래요. 저 하나 때문에 장소를 바꾼다는 것이 참…

자인

한국이 아니라면 채식이 더 쉬울까요?

가은

제가 대만에 여행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놀랐던 점은 먹거리에 불편함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길거리 지나가다가 素라는 글자가 보이면, 채식음식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채식 만두도 사먹어 보고! 그런 점이 좋았어요.

자인

우와

가은

프렌차이즈도 그랬어요. 모스버거에 그냥 탄산음료나 마실 요량으로 들어갔는데, 채식 버거가 있는 거예요! 패티 대신에 버섯을 넣고, 밥을 빵으로 해서 만든 건데 맛있었어요. 그렇게 채식 메뉴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어요.

직접 보여준 모스버거 채식 버거 사진

그때 먹은 버거. ⓒ최가은

자인

아까 말한 ‘잡식 가족의 딜레마’에 나오는 아이처럼 괜찮은 선례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은 ‘그래도 좀…’ 같은 분위기가 있긴 한 것 같아요.

가은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많지 않잖아요, 특히 한국엔. 그래도 결혼은 하고 싶고(웃음) 그런 고민이 많긴 해요, 나이 들어가면서.

자인

채식도 결혼 조건에 포함되겠죠?

가은

네. 저는 가정을 꾸릴 때도 남편이 그런 걸 할 건지 여부를 따질 거고, 아이도 채식을 시킬 생각이에요.

자인

굳은 의지!

가은

아이 의사도 물어봐야겠지만,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채식을 시킬 생각이에요.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인터뷰 전에는 고민이었다.'한국에서 채식하는 삶이 가능할까?' 였다. 전세계 맥도날드 수보다 치킨집이 더 많은 나라에서 과연 채식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다. 채식,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문제는, 내가 시작할 마음을 먹는 것. 그리고 ‘일단은’ 시작하는 것.

제2탄 예고

자인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

제가 채식하기 전에 치킨을 참 좋아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치킨이 전남친이었다면, 저에겐 전남편이었어요. (웃음) 그 정도로 좋아했지만…

자인

좋아했지만…?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Pin on Pinterest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허자인

허자인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그냥 대학생.
허자인

허자인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