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Veggies ② 채식을 위해 구남칡도 버렸어요

채식인 이야기 두 번째, 채식을 스스로 결심하고 시작한 케이스.

최근에 채식을 막 시작한 사람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채식 이야기를 듣고 온 지 1주일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명쾌해졌고, 어쩐지 교양 수준이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모든 채식주의자가 부모님 따라서 채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고기 맛을 아는 채식주의자는 무슨 계기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근래에 채식을 시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수소문을 해 보니, 의외로 어렵지 않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마침 궁금했던 유형이었다. 20년 넘게 유지해 온 식습관을 확 바꾸어 1년쯤 전부터 채식을 시작했다는, 이수영 씨 (가명, 24세)

그녀는 락토 오보 채식주의자에 해당한다

그녀는 락토 오보 채식주의자에 해당한다

 

“저에게 치킨은 남친 정도가 아니라 남편 같았어요”

자인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수영

졸업을 앞둔 여학생이에요. 치킨을 참 좋아했구요.

자인

역시 치킨이죠!

수영

웹툰 ‘역전 야매요리’ 보시면, 거기서 치킨이 ‘구남칡’으로 나오잖아요? 가소롭죠. 다른 사람들에게 치킨은 전‘남친’이었다면, 저에겐 ‘전남편’과 같은 존재였달까.

역전야매요리 114화 구남칡

가끔 네 생각이 나느냐고? 아니 전혀. ⓒ정다정다

자인

사별하셨군요. (진지)

수영

(웃음) 그 정도로 치킨과 고기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결별을 했죠.

자인

원래 채소를 좋아하셨다거나?

수영

고등학교 때는 급식 메뉴가 세 개였어요, 면, 양식, 한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저는 무조건 고기반찬 있는 걸 먹었어요. 그런 사람이 채식을 하게 되었죠.

자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수영

지난 학기에 본 동영상 하나가 저를 확 바꿨어요. 기억하기도 좋게, 빼빼로데이였네요.

자인

어떤 동영상이었기에!

수영

지난 학기에 ‘환경윤리’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그 때 교수님이 동영상 하나를 틀어 주셨어요. 구제역 동영상이었는데, 구제역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의심되는 지역의 돼지들을 다 도살하는 거였어요.

자인

맞아요. 그때 한참 그랬죠.

수영

엄청 큰 트럭으로 그 애들을 우겨넣어 실어다가 엄청 큰 구덩이에 쓸어넣어 다 죽이는 거예요. 그 영상을 봤는데, 사람들 표정 다들 안 좋죠. 그런 불편한 것 보면 불편한 마음 생기잖아요. 불쌍하다,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나.

자인

저는 뉴스에 그런 거 나오면 그냥 딴 거 틀었어요. 너무 끔찍해서.

수영

맞아요. 끔찍했죠.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구제역이 아니었더라도, 결국 걔들은 우리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 죽잖아요? 근데 (생매장 당하는) 쟤네만 불쌍하다 생각하는 것도 위선적이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거에요.

자인

음…

수영

그래서 이참에 채식을 할까 생각했었던 거고요. 참, 제가 제가 멍멍이를 두 마리 키워요.

자인

멍멍이요?

수영

치와와인데 다리가 엄청 퉁퉁… 아니, 통통하구요.

자인

(‘퉁퉁’이라고 쓴 메모를 지우며) “통통”…

수영

치킨 먹으면 맨날 줘서 그래요(웃음) 근데 어느 날은, 뭔가 닭한테 미안한 거예요. 얘는 불쌍하게 태어나서 치킨이 될 운명에 있고, 멍멍이들은 팔자 좋게 태어나서 닭다리 얻어먹고. 같은 동물인데. 그런 기억들이 구제역 동영상 위로 막 포개져요.

그래서 채식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니까, 친구들이 받아 주질 않더라고요.

 

“친구들은 진지하게 받아 주질 않더라고요”

자인

치킨이 구남편인 애가 무슨 소리냐, 뭐 이런?

수영

네. 근데 이해는 해요. 사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고… 그래서 일단 서점에 갔어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책이라도 보면 어떨까 해서. ‘맛있게 채식하는 법’ 뭐 이런 제목으로 시작하다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말을 생각해 보니 이상한 거에요.

그러게

자인

그러게요?

수영

저랑 딱 맞잖아요. 개는 사랑하면서 돼지랑 닭은 맛있게 먹는 그런 상황. 왠지 이걸 사면 바로 채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역시.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딱 다잡히는 거예요. 덕분에 도축의 불편한 진실 같은 것도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채식을 굳게 결심할 수 있었어요.

자인

그럼 그 때부터 일 년 정도 되어 가네요.

수영

네, 거의 1년 했어요. 오는 11월이면 딱 일 년.

(※ 편집자주 : 인터뷰는 지난 10월에 진행되었습니다)

자인

지금 채식의 단계가?

수영

락토 오보요. 계란이랑 우유는 먹는.

자인

채식 하는 그 범주를 딱 정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하면 확실하게 확 모두 비건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하면 확 하고! 어! 아니면! 어! 확 말고!

하면 확 하고! 어! 아니면! 어! 확 말고!

수영

(웃음) 채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자인

무조건 안 먹는게 더 좋은 거 아니구요?

수영

네. 제가 고기도 고기지만 빵이든 아이스크림이든 정말 좋아하거든요. 고기를 끊으니까 그런 쪽으로 돌리게 되더라고요. 근데 우유를 끊는다면… 아휴 힘들어요. 못해.

자인

할 수 있는 만큼.

수영

처음부터 비건으로 시작했으면 못 했을 거에요. 물론 욕심은 있어요. 내년에는 우유랑 계란까지 끊고 완전 비건으로 가서, 김치도 직접 담가 먹으려고 해요.

자인

아 맞다. 일반적인 김치는 채식에 안맞다고 하더라구요.

그 이야기를 하며 지난 인터뷰 때를 떠올린 허자인 에디터였다.

그 이야기를 하며 지난 인터뷰 때를 떠올린 허자인 에디터였다.

 

채식, 당신도 시작할 수 있는 일.

자인

다른 분들께도 드렸던 질문인데, 몸의 변화가 있었나요?

수영

이를테면요?

자인

어, 채식 이후에 체력이 달린다거나,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거나.

수영

음. 채식하고 일, 이주 정도는 거의 비건처럼 먹었어요. 밥에 김 싸먹고, 풀 반찬 같은 것만 먹었거든요. 우유도 안 먹고, 계란이나 빵 같은 것도 안 먹고. 그래서 그때는 일어나면 어지럽고 그런 게 있었어요.

자인

그래서 아까 ‘할 수 있는 만큼’ 이라고…?

수영

네. 그 이후에는 계란이 들어갔지만 계란 형태가 안 보이는 것 정도는 먹었고, 한 달 정도는 두유를 먹었어요. 그것까지 안 먹으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딱히 어지럽단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자인

더 좋은 점은 없나요. 다이어트라던가 다이어트라던지…

수영

아 다이어트요? 완전 좋죠! (웃음) 채식하고 한 삼사일 지나고서부터는… 와, 제가 정말 변비가 심했는데, 쾌변 진짜 짱짱. 화장실 가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고, 뱃살도 많이 빠졌고!

귀가 솔깃했다 ⓒ웹툰 '열혈초등학교'

귀가 솔깃했다 ⓒ웹툰 '열혈초등학교'

자인

아까 책 이름이 뭐였죠. 이따 가는길에 사 봐야…

수영

(웃음) 완전 비건으로 되면 더 날씬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자인

신념을 지키니 이런 부수적인 효과도 따라오네요.

수영

네. 근데요,

자인

?

수영

애초에 이런 걸 바라고 채식을 하면 금방 그만두게 될 거예요. “에이, 별거 없네” 하면서 금방 맘에 드는 황제 다이어트로 전향하게 될지도 몰라요.

자인

혹시 심적인 변화는 있었나요?

수영

어… 사람이 좀 착해진다는 거요?

자인

네?

수영

그러니까, 제가 채식하기 전에 언니랑 크게 싸운 적이 있었거든요. 좀 오래된 싸움이었는데, 채식을 하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채식까지 하는 마당에 누굴 미워해서 뭐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세인트 영맨 일부

아… 이것은 깨달음의 경지….

수영

그래서 제가 먼저 화해하자고 했거든요. 그냥 좀 착해진 것 같아요. 채식까지 하는데, 이런 동물들까지 생각을 하는데 저 사람한테 화를 내서 뭐 하겠어 하는. 전보다는 확실히 성격이 좋아진 것 같긴 해요.

자인

(존경) 그렇군요… 가족들 반응은 어때요?

수영

채식 전에는 엄마가 우리 많이 먹으라고 고기를 안 드시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고, 엄마가 정말로 고기를 안 좋아하시는 거더라고요.

자인

뜻밖의 발견…!

수영

그래서 이제는 저랑 둘이 먹을 땐 청국장 하나 해 놓고, 밑반찬 풀반찬으로 한두 개 해 놓고 엄마랑 둘이 밥을 먹어요. 그럼 되게 기분이 좋아요. 또 집 밖에서는 채식을 하기 힘드니까, 가급적 밖에서 안 먹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랑 먹게 되고, 더 친해진 기분도 들고.

자인

혹시 채식하시고 나서, 미각이 살아나거나 한 변화도 있으셨나요?

수영

맛있게 먹으려면 맛을 내야 하잖아요. 근데 고기 없이 맛 내기가 되게 힘들어요.

자인

그렇죠. 육수라는 말도 고기 육(肉)자 쓰잖아요.

수영

그래서 저희 엄마 같은 경우는, 다시마랑 표고버섯을 주로 넣으시더라구요. 그거 말고도 야채 듬뿍, 두부 듬뿍 넣고. 그 전에는 단맛, 짠맛, 감칠맛 같은 것만 좋아했었거든요. 아니, 좋아했다기 보다는 몰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런데 이렇게 먹다 보니 재료 하나마다 맛이 다 느껴져요. 그때 알았죠. 아, 세상에 맛이 이렇게나 풍부했구나.

 

“이를테면 화장품 같은 것에도 신경을 쓰게 돼요”

자인

이건 또 물어보게 되네요. 뒷풀이나 밥 약속은 어떻게 하세요?

수영

두 명까지는 괜찮아요. 상대는 고기 먹고 나는 다른 걸 시키는 가게를 고를 수 있어요. 근데 세 명이거나, 네 명 이상이면 그게 좀 복잡해져요. 나 때문에 그런 데 가기도 그렇고 안 가기도 그렇고…

자인

(1화 인터뷰를 떠올리며) 네… 그렇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수영

근데 저번에는 좀 특별한 ‘뒷풀이’를 했어요. 다섯 명이서 듣는 교직 수업이 있어요. 종강 후에 교수님이 밥을 사주셨는데, 저 채식하는 거 들으시더니 인도커리 가게를 가서 시금치 커리를 골라주시는 거예요. 진짜… 너무 좋았어요. 저 채식한다고 지나간다는 말로 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Meet the Veggies 1탄 중

가은 씨, 이 세상에 아직 배려의 정신은 살아 있었습니다!

자인

항상 여쭙기가 어려워요. 술이든 고기든, 그런 걸 다 먹어야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수영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어 그래, 하고 말아서 그렇게 생각보다 나쁘거나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아직까진.

자인

조금은 바뀌고 있네요.

수영

가끔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그럼 식물도 생명이니까 이슬이나 먹고 살라는 식으로. (웃음)

네?

네?

자인

그런 사람들한텐 어떻게 답하세요?

수영

그냥… 포기를 하죠. 처음에는 ‘내 주변 사람들도 채식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들 고기 먹는 것도 신경 안 써요. 넌 먹을 거 먹고 난 나 먹을 거 한다는 식.

자인

음.

수영

근데 진짜로, 채식을 할 때 이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다 살리겠다 하지 말고, 나 혼자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하는 것. 이를테면 전 화장품까지도 신경을 쓰고 싶어요. 동물실험 한 것들은 쓰지 않고 싶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비싸요. 그래서 일단은 마음에 담아두는 거에요.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거. 고기 안 먹겠다 정도만.

자인

신념이 단단하시구나.

수영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구요.

자인

포기요?

수영

이렇게 한 1년 지나다 보니까, 사람에 대한 기대가 떨어져요. 문명, 사람 같은 것에 대한 비관? 오는 길에도 지하철 타고 오고, 차 타고 오고, 화장하고 차려입고 오고, 편하게 앉아서 공부하고. 다 어쨌든 문명이잖아요. 그걸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문명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걸 느낄 때는, 뭐, 그냥 시골 내려가서 살고 싶다…? 막 이래요.

아...또 꺠달음이 이렇게...

아… 또 깨달음이 이렇게…

자인

마지막 질문입니다. 채식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수영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다만 저는 반대로 채식을 결심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주 1회 고기 안 먹겠다, 일주일에 한 끼 안 먹겠다, 해산물까지만 먹겠다… 이 정도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한다는 것이 일단은 중요한 거니까.

 

“‘주 1회 고기 안 먹기’부터라도 해 보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월요일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다. 관련 소식과 홍보물들을 보며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내 자신을 문득 보았다. 채식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원래 고기를 좋아하다가 안 먹기 시작한 사람과 인터뷰를 갖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도 Meat Free Monday 캠페인을 보며 ‘뭐 어디서 이상한 사람들이 유난 떤다’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하지만 수영 씨가 잘 경험하고 설명해 주었듯이,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하는 삶도 충분히 장점이 있고 시도해볼 만한 삶인 것 같다. 게다가, 처음부터 모든 살생을 다 금기시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도입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마침 내 월요일 시간표도 오후 수업뿐이고. 월요일에는 집에서 밥 먹고 나갔다 들어와서 저녁 먹고, 밥 약속을 잡아도 고기 없는 걸로 먹자고 해 볼까? 음 뭐 그래,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지도.

제3탄 예고

자인

혹시 채식을 시작하시고 난 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요?

??

이전에는 고기는 그냥 ‘고기’였거든요. 햄을 보면 그냥 햄이지 거기서 살아있는 돼지가 생각나진 않잖아요. 근데 어제는 그 햄을 먹는데, 살아있는 돼지가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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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그냥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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