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the Veggies ③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채식을

설날 끝나고 진짜 시작하겠음.

채식을 결심할 분명한 이유가 하나만 더 있다면

육식을 하지 않는 삶은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전투적이었다. 그것은 단지 채소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식당 한 곳, 반찬 하나를 고를 때도 이유를 따져서 자기 양심에 따라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생활 방식이었다.

알면 알 수록 점점 ‘찔리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고기만 안 먹는 것’만으로 괜찮을까, 그럼 계란, 우유, 생선이나 다른 것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마지막으로 딱 한 분만 더 만나뵙기로 했다. 내가 왜 채식을 해야 하는지 더 굳건한 이유를 제시해 줄 수 있는 분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만났다. 서울 모 대학 재학생이고, 녹색당 활동도 하고 있으며, 도시에서의 지속 가능한 전환을 고민하는 ‘전환도시 신촌’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는,?장현희(가명)씨. 그녀는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세미 베지터리안이고, 정확히는 페스코에 해당한다

그녀는 세미 베지터리안이고, 정확히는 페스코에 해당한다

 

“아, 채식이 무조건 안 먹는게 아니구나”

현희

이번 여름방학 때 책 읽기 모임을 했었어요. 에너지, 동물권, 기본소득, 녹색전환… 그리다가 동물권 운동가이자 생태철학자인 사람인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었거든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자인

기분이 어떠셨어요?

현희

세미나 끝나고 다들 배가 고파서 뒷풀이를 갔어요. 근데 도저히 고기를 먹으러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걸 보고 또 고기 먹기 좀 그렇잖아요. 그러다 이틀 동안 채식했는데, 한 김에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인

의외로 간단하다...

현희

사실?이전에도 한 번 채식을 시도했었거든요.

자인

처음이 아니셨군요.

현희

그때는 실패했어요. 되게 나이브하게 시작한 거라서.

자인

그때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신 거에요?

현희

인도랑 네팔 여행을 합쳐서 두 달 반 정도 했어요. 거긴 먹거리 포장에 항상 초록색, 빨간색 동그라미가 있어요. 초록색은 비건 용이고, 빨간색은 뭔가 고기가 들어 있다 하는 표시였던 걸로 기억해요. 거긴 워낙 다양한 방식의 식문화를 가진 종교가 있으니까, 힌두교는 소를 안 먹고, 이슬람교는 돼지를 안 먹고, 불교는 아예 비건일 수도 있고. 이런 종교들이 다 있는 나라니까.

자인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네요.

현희

네. 그런 문화에 몇 달 있다 보니까 그냥 ‘고기를 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분은 닭고기만 먹는 채식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아, 채식이 무조건 안 먹는게 아니구나. 그럼 나도 해볼까? 그런 생각.

인도의 소

요런 나라다 보니.

자인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계속해서 채식을 유지하시는 중이시네요.

현희

자극의 정도가 달랐어요. 피터 싱어는 좀, 뭐랄까요, 굉장히 논리적으로 ‘모든 생명은 동등한데 인간만이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요.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더 특별할 이유가 없는 거죠. 우리가 인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육식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 같은 것도 나와 있었고. 또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영상으로 보면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돼지들이 좁은 스톨 안에서 평생 제대로 몸도 못 돌리다가 새끼돼지를 생산하거나, 고기로 팔려 나가거나. 그런 자극들이 연달아 있으면서 시작됐죠.

동물해방

이쯤에서 교양도서 한 권 추천.

자인

채식에도 단계가 있잖아요. 어느 정도까지 하세요?

현희

네, 중간중간 고기를 먹을 일도 있었는데, 그래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어요. ‘페스코’ 채식이라고 해서, 우유, 달걀, 해산물까지 먹고 붉은 살코기나 닭고기, 그러니까 육고기는 안 먹는.

자인

이 정도 단계를 잡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현희

육고기를 안 먹는 건 방금 말씀드린 대로고요. 나머지는 음식 선택에서 우유나 달걀, 해산물을 빼고 나면 음식 선택지가 너무 적어지고, 단백질 섭취가 어렵다는 정도예요.

 

선택할 수 있는 채식의 삶

자인

다른 분들께 단백질 섭취는 어떻게 하냐고 여쭸더니, 콩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기억나시죠?

기억나시죠?

현희

우유, 달걀, 해산물 먹긴 먹는데 지양하고는 있어요. 우유 대신 두유를 먹고. 원래 씨리얼이나 그래놀라를 많이 먹는데, 두유에 먹어요. 달걀도 굳이 사먹진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재료로 조금 들어가 있으면 그냥 먹고. 단백질이 부족할 것 같을 때 계란 흰자, 두유, 해산물 좀 먹고요.?그래도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 ‘대두분리단백’을 샀거든요.

자인

대두분리단백?

현희

이게 뭐냐면, 콩에서 분리한 단백질을 파우더로 만든 거예요. 생긴 건 미숫가루 같이 생겼는데 좀 더 고와요. ‘잡식 가족의 딜레마’에서 고기로 단백질 섭취하지 않아도 튼튼한 몸을 가꾸는 보디빌더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찾아봤어요. 찾아보니 단백질 보충제, 그 중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대두분리단백이 나와 있더라고요.

자인

우와.

현희

근데 잘 안 먹게 돼요. 맛이 없어서요. (웃음)

자인

(슬픔)

맛이 없다니...

맛이 없다니...

자인

다른 분들은 비건으로 돌리고 싶다고 하신 경우도 있었는데, 변경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현희

아직은 없어요. 우유, 달걀, 해산물도 굳이 찾아서 먹지는 말아야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회 생활 하다 보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되게 중요한 문화잖아요, 서로 공유하는. 그런 때에 너무 걸리는 게 많은 게, 제약이 많은 게… 지금 사실 전 그렇게 불편하지 않거든요? 너무 의무적이고 옭아매는 느낌이 들면 저는 싫어서, 더 이상 안 먹고 싶진 않아요.

자인

다른 분들께도 물어본 질문입니다. 채식을 하고 나서 몸에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현희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자인

어, 건강하거나 그런 점도 없으시구요?

현희

음. 저는?햄버거가 먹고 싶잖아요? 그럼 그냥 쉬림프 버거를 먹어요. 제가 인도나 태국 요리를 좋아하는데, 그럼 가서 해산물 커리 먹고. 먹고 싶은 거 다 먹는데, 어딜 가든 채식 메뉴 하나나 해산물 메뉴 하나는 있거든요. 어딜 가나 그 정도는 있기 때문에, 딱히 살면서 그렇게 달라진 느낌은 평소엔 별로 없어요.

자인

원칙이 있는게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이 결국 “채식”인 거네요.

현희

근데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그냥 맛있으면 먹잖아요? 그럼 이젠 뭐가 먹고 싶으면, 맛집이라더라, 유명하다더라, 가봤는데 맛있다더라, 할 때, 이제 뭐가 들어가는지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무슨 재료로 만들어지고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고 먹으니까. 좀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느낌이.

 

“이전에는 고기는 그냥 ‘고기’였거든요”

자인

혹시 채식을 시작하시고 난 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잡식 가족의 딜레마’?보고 나서부터 고기를 먹으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현희

전 죄책감은 아닌데, 꺼림칙함이 들어요. 느낌이 조금 다른데, 설명하기 애매한데… 사실 제가 어제 고기를 먹었거든요. 어제 대학원 면접이었는데, 아는 분이 면접장 앞까지 직접 찾아와 주셨어요, 응원해 주신다고. 정신이 없어서 밥을 안 먹고 갔는데, 꼭 따뜻한 걸 먹고 가야 된다고 하셔서…

자인

(불길)

현희

그 때 따뜻한 게, 카페에서 파는 크로크 무슈나, 그릴드 샌드위치 같은 햄 들어가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크로크 무슈 사진에는 고기가 안 보여서 시켜 주셨거든요. 근데 나오고 보니 고기가 있더라고요. 근데 응원해주려고 오셔서 사 주신 건데… 오랜만이니까 먹어볼까? 하고 먹어봤는데, 뭔가 꺼림칙해요. 이전에는 고기는 그냥 ‘고기’였거든요, 먹는 거.

자인

그렇죠. 먹는 거.

현희

햄을 보면 그냥 햄이지 거기서 살아있는 돼지가 생각나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제육볶음이면 그냥 제육볶음이지, 돼지라는 생명? 살아있는 돼지라는 게 안 떠올랐거든요. 근데 어제는 그 햄을 먹는데, 살아있는 돼지가 떠오르고 생명으로 느껴져서, 입에 들어가는 게 꺼림칙한 느낌? 그랬어요.

생각해보면 섬뜩한 사진이다

생각해보면 섬뜩한 사진이다

자인

채식하시면 꼭 들으시는 질문이 있더라구요.

현희

이를테면?

자인

‘너 채식하면 고기 안 먹고 싶어?’ 같은.

현희

있죠, 고기 먹고 싶을 때 있죠. 근데 항상 먹고 싶은 건 아니고, 또 제가 ‘고기’를 먹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고기 자체가 아니라 고기가 들어간 특정 음식, 이를테면 쌀국수가 끌린다거나. 그런 식.

자인

다른 문제네요.

현희

네 , 예를 들면, 저는 양념치킨 되게 좋아했었어요. 근데 후라이드치킨은 별로 안 좋아해요, 양념을 좋아하는 거지. 그럼 양념을 좋아하니까… 떡꼬치를 먹어요. ‘내가 뭘 좋아하지?’를 궁극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양념치킨에서 치킨이 아니라 양념을 좋아하는 거니까 떡꼬치를 먹으면 되겠구나.

자인

정교하다!

현희

그렇게 바뀌는거죠. 사실 채식메뉴를 다양하게 팔면 이런 고민도 크지 않을 것이고.

 

세상의 식생활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

자인

혹시 재학 중인 학교 안에는 채식 메뉴 파는 곳이 있던가요?

현희

없어요.

자인

하나두요?

현희

네. 그래서 좀 아쉬워요. 저희 학교가 글로벌캠퍼스를 지향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외국 국적 학생이나 교환학생을 많이 신경 써요. 많으면 많을수록 글로벌 관련 점수가 올라가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의 학생들이 방문을 할 텐데.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요.

특히 음식에 민감한 문화가 많잖아요. 이를테면 이슬람교도도 있을 수 있고, 힌두교도도 있을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밥 먹을 만한 곳이 아직은 별로 없어요.

자인

우리 나라에서 할랄 푸드를 구할 길이 없다고 하면 꼭 그런 게 덧글로 달리잖아요, 인터넷에서. 우리 나라에 왔으면 우리 나라 식으로 맞춰야지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현희

그건 아니죠. 한국에서 지내면서 비빔밥을 먹을 수는 있는데, 적응을 한답시고 강제로 할랄되지 않은 삼겹살을 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마침 저희가 지난주에 '제발 문명인이 됩시다' 라는 특집을 진행했는데요... ⓒ식객

마침 저희가 지난주에 '제발 문명인이 됩시다' 라는 특집을 진행했는데요... ⓒ식객

현희

(갑자기) 아, 달걀 얘기.

자인

달걀요?

현희

네. 달걀 같은 경우는, 일단 먹기로는 했는데 고민이 돼요. 동물복지, 유기농 이런 게 있고요. 저는 이왕이면 동물복지 인증 있는 걸 사거든요. 근데 이것도 진짜 동물복지인가 싶기도 하거든요. 근데 다른 안 써있는 건 더 못할 확률이 높으니 그냥 사고. 아니면 ‘야마기시 공동체’ 달걀 사요.

자인

그곳에서는 풀어서 키우나요?

현희

닭장은 있는데, 계속 고민을 하면서 양계 방식을 수정해 온대요. 일본에서 시작돼서 몇십 년 된 건데. 야마기시라는 사람이 만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사람이 닭이 행복한 환경에서의 양계업을 고민하다가, 이것을 사람들의 삶, 공동체에도 옮겨오자고 해서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소유 공동생산을 실현해보는 마을로 알고 있어요.

자인

한국에서도 시도들이 많네요.

현희

네, 이 ‘야마기시즘’을 한국에서 실현하는 곳이 ?경기도 화성엔가 있거든요. 여기서 생산하는 달걀은 가끔 신촌의 체화당에서 살 수 있어요. 그렇게 사먹은 적도 있고요.

자인

가격대 얼마 정도예요?

현희

20알에 6천원 정도.

자인

그렇게 막 비싸지는 않은 느낌.

현희

네. 그냥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죠.

흔히 생각하는 양계장과는 다르게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2008년 사진이니, 지금은 더 많은 고민이 들어간 닭장이 되어 있겠지.

누군가에게 채식은 실천 되고 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자인

마지막 질문입니다. 채식을 할 때, 그 이외에 좋았던 일이 궁금해요.

현희

제 자신이 가치 지향과 일상에서의 실천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되게… 뿌듯하달까요.

자인

괴리되지 않은 삶?

현희

네!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그런 것까진 아닌데, 그 전에는 그렇지 않으면 찔리는 게 있었거든요. 동물권 책과 영화를 보고, ‘공장식 축산이 잘못되었구나’라는 걸 인식을 했는데, 그 인식은 ‘잘못되었구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을 할 수 있는, 합일이 되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저는 좋아요.

자인

찔릴 게 없는, 건강한 삶이네요.

현희

네. (웃음)

 

이젠… 이젠 결심만 하면 돼!

여러 채식주의자들을 만나 보았다.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것 같다.

1) 무조건 채소만 먹는 것이 채식이 아니다

2) 굳이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부터 실천하자.

3) 극단적으로 흐르지 말고, 신경쓸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열심히.

그래서 일단은 시작하기로 했다. 집에 가면서 두부도 한 모 사 가야지. 오늘 저녁은 연두부 새싹 비빔밥으로 먹어야지.벌써부터 건강한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기름진 음식이 가득한 설날이 눈 앞에 있긴 하지만, 버텨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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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그냥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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