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 1년간 학급을 책임질 반장선거가 한참이었다. 실내화에 구멍이 날 때까지 열심히 뛰겠다는 열혈파부터 모든 학생들에 1인 1피자를 제공하겠다는 과잉복지까지, 그렇게 다양한 공약들이 나오고 있었다. 모든 후보들의 발표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투표용지를 나눠주시던 그때, 옆에서 이런 말을 한다.
?“야, ?A찍어 ?A."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게 그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아 뭐해. 피자 안 먹을거야?"
누구에게나 한번 쯤 있을만한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내 기억 속에서 그 사건은 유독 강렬하게 살아있었다.?그리고 궁금했다. 그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담임 선생님은 왜 반장을 뽑는지에 대하여 단 한번도 제대로 말씀해주신 적이 없었다. 덕분에 반장이라는 말의 의미는 언제나 막연했다. ?어딘가에서는 가장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었고, 또 어딘가에서는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을 의미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로 무작정 투표를 하라고 하니, 순간적으로?끌린다거나 자신의 욕구를 채워 줄 사람을 ‘내가 지지하는 후보’라고 착각하고, 주저없이 표를 주었다. 그리고?그런 투표의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중학교 전교회장이 하는 일이 제대로 모르고서 친한 친구의 형이라기에 한 표를 행사했으며, 제휴업체를 많이 끌어오겠다는 대학교 총학생회 후보에 마음이 끌리는 식이었다.
새삼 생각해본다.?국회의원은 그저 '지역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단순히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총선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인기투표를 하고 있는걸까?
혹시 국회의원이 통신단말기나 주택 월세를 좌지우지할 법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 연봉의 수십배의 예산을 편성하고 결산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면 뭔가 조금은 바뀔까? 좀 더 나아가서, 시장, 군수, 구청장, 도지사, 교육감, 그리고 각 자치단체 의원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지를 알게 된다면 조금은 다르게 바뀔 수 있을까?
지난 3월 31일, 타임라인에 장인어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승민(무소속, 대구 동구 을) 후보와 김부겸(더불어민주당, 대구 수성구 갑) 후보의 친딸의 외모를 비교하는 기사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정치인이란, 정무직 공무원이란 그렇게 선출하기에는 너무도 무서운 자리이다. 그가?내리는 정책 하나하나에 누군가는 땅을 잃고, 집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존재를 부정당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번 선거를 단순히 자녀들의 외모 인기투표로 놓고 표를 행사하기에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장선거의 후기를 전한다. 반장이 된 그 친구는 피자빵을 돌렸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집권이 시작되었다. 그의 뜻에 따라 축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반 분위기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떠드는 사람' 명단에 적히는 식이었다. 기억하기 싫은, 몹시 힘든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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