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게 아니라, 하지 않는 우리들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2016년 7월 8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두 가지 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New Shelter: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과 <The City of Homeless>였다. (이하 ‘<뉴 쉘터>’, ‘<홈리스>’) 두 전시가 바로 옆 공간에서 정확하게 같은 날짜에 열리고, 전시 개막식까지 같이 열렸다는 것은, 전시 기획자가 관객에게 둘 다 반드시 같이 봐야한다고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뉴 쉘터>에 대한 정보만 본 채로, 친구와 함께 두 전시에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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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에 대한 <뉴 쉘터>의 깜찍한 제안

<뉴 쉘터> 전시 제목에 ‘난민’이라는 키워드를 보았을 때, 나는 전시에서 난민을 재조명하는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난민’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뉴 쉘터>는 오히려, 난민이라 불리우지 않는, 그러나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회적 약자를 찾아간다.

이주노동자, 유기된 반려동물, 수 십만 단위의 대량탈북상황을 가정한 탈북민(이들도 분명 난민이지만, 우리는 이들을 난민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 대학로 보도블럭 사이에 끼어 태어난 작은 풀까지. 그리고 전시 제목의 ‘제안’이라는 표현처럼, 난민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방법을 제시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난민의 처참한 생활상, 특히 실제 난민의 얼굴이 직접 드러나는 경우는 없었다.

나름 난민에 관한 전시인데, 전시장 안에서 난민 얼굴 보기가 힘들다.

나름 난민에 관한 전시인데, 전시장 안에서 난민 얼굴 보기가 힘들다.

<뉴 쉘터> 전시 제목이 주는 진중한 느낌과 달리, 작품으로 등장하는 제안은 꽤나 깜찍하다. 유기동물을 수용하기 위해 단독주택의 마당 한 켠을 내 주자는 제안(<마음 한쪽 마당 한쪽 내어주기 프로젝트>), 난민이 한국에서 살면서 검색하는 일상 정보의 내용을 데이터로 모아보자는 제안(<빅데이터 셸터링>), 예비군 훈련장의 구조를 살짝 바꿔서 안락한 탈북민 임시거처로 활용하자는 제안(<잠정적 완충지대>), 대학로 보도블럭에 피어있는 잡초를 모두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기고 이름을 찾아주자는 제안(<난초(難草), 식물난민>) 등등.

만약 당신이 난민들이 겪는 가슴아픈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면, 큰 실망을 품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난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면, 큰 희열을 느끼고 돌아갔을 것이다.

“왜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지?”

<뉴 쉘터>와 <홈리스> 전시를 다 보고 나온 뒤, 친구와 저녁을 같이 먹었다. 친구는 “평소에 난민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라는 말로 운을 떼었다. 한국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하는 신청자의 비율이 낮다는 사실, 외국에서 공부할 때 난민문제에 대해 토론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을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뉴 쉘터> 전시의] 동물 이야기는 진짜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을 계속 곱씹어보았다. 물론 반려동물이나 난초, 상황이 조금 다른 이주노동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대량의 탈북민을 난민에 대입하는 것이 과도한 주제확장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고통받는 난민, 그리고 난민 신청조차 인정받지 못한 수 많은 이주자들의 문제에 비하면, 심각하지 않은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다. 심지어 불쾌하게 여기더라도 이해하겠다. 지금 난민들이 겪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동식물이나 가상의 상황에 대한 제안이 무슨 소용이냐며.

그러나, 굳이 그렇게 여길 필요가 있을까? 어째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에 주목해야 할까? 그 제안은 왜 난민이 아닌,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약자에게 주목하는 것일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우리 주변의 <홈리스>

그 답은 의외로 가까이, 바로 옆 전시실에 있었다. <홈리스> 전시는 다양한 이유로 집에서 나온 사람들?유학, 이민, 가정폭력, 경제적 파산, 이주 노동 등?이 살아가는 모습을 되새기게 한다. <뉴 쉘터>와 달리, <홈리스>에서는 집에서 나온 이들의 모습이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얼굴이 잘린 채 인터뷰한 영상, 공사 중단된 마천루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사진, 노숙인들이 눕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징이 박힌 계단 사진에서 그들의 모습을 계속 봐야 한다. 심지어, 노숙생활에 대한 인터넷 강의 동영상(<노숙자 학원>)에서는 노숙이 비참한 이유를 칠판에 하나하나 적어가며 설명한다.

"노숙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목연, , 동영상, 30분, 2016.

"노숙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유목연, <노숙자 학원>, 동영상, 30분, 2016.

<홈리스> 전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모습만 보아서는 알아채기 힘들다. 다만 그들이 늦은 시간 폐건물이나 길거리, 비좁은 쪽방에 모일 때, 우리는 그들이 집을 나왔다고 알아챈다.

그리고 집을 나왔다는 이유로, 외면하기 마련이다. 알아서 그 춥고 비좁은 곳에서 잘 자겠거니 여기면서.?그런 의미에서, 집 잃은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거나 박해받는, 난민과 같은 처지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묻혀지는, 그들이 집에서 나오게 된 사연. 그들이 가진 교육, 이민, 가정폭력, 경제와 후생복지, 이주 노동의 사회문제 이야기는 생명력을 잃는다. 사회문제는 그저 거대한 나라 안에서 몇 가지 통계수치로만 남게 된다. 그러다보니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그저 통계수치를 호전시키려는 노력으로 바뀌고, 겉핥기에 불과하거나 실상과 동떨어진 해결책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한국사회에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는 프로세스는, 거의 비슷하다. 너무 거시적이어서, 너무 무겁게 다뤄서, 또는 그 문제 하나에만 매몰되어 사고가 굳어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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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이런 해결책이라도 생각해봐야. Leah Borromeo, <Space, not Spikes>, 영상설치, 2016.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의 연습장

아르코미술관의 두 개의 전시는, 당장의 난민 문제, 또는 그 외의 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안을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어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데 매우 중요하다.

<홈리스>는 우리가 잊고 있던 집을 잃은 사람들을 조명하고, 그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통계나 거대담론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로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다. <뉴 쉘터>는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난민 문제와 같은 결을 가진 새로운 문제를 찾아낸다. 난민 문제보다는 덜 심각하고 덜 시급하지만, 해결책을 찾기 좀 더 쉬운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함으로서, 난민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던질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계속 사소한 문제에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개인의 문제, 사소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결국 커다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의 연습장이 될 것이다. 그 연습을 통해, 우리는 더 커다란 사회문제를 해결할 원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의 현재진행형.

어딘가의 현재진행형.

우리는 이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활용할 줄 몰라서 문제지.

불현듯, <뉴 쉘터> 전시에서 상영되고 있던, 참가 작가들의 작품 설명 영상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답안이 필요하다는 조바심섞인 우려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빅데이터 셸터링> 작품의 김찬중 작가(THE_SYSTEM LAB 대표)가 한 말이다.

“원래 처음에 이 전시의 제목을 지을 때엔, <New Shelter = No Shelter>라고 지으려고 했어요.
난민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게, 새로운 주거장소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이미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서 어떻게 매칭해서 난민들의 자리에 넣어줄 지의 문제이지.
그래서 “뉴 쉘터”라는 것은 우리의 기본 인프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 말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게나 효율적이라는 세상에서 집 없이 내몰린 사람이 이렇게 많다. U-TT, , 영상, 20분, 2016. [출처] 이것은 사소한 제안이지만, 커다란 사회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비공개 카페)

그렇게나 효율적이라는 세상에서 집 없이 내몰린 사람이 이렇게 많다. U-TT, <토레 다비드Torre David>, 영상,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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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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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디자이너. 글 써야 할 때 그림 그리고, 그림 그려야 할 때 글 쓰는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