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약간 다른 의미에서의) 노래들

2016년 전체를 5곡의 음악으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2016년 최고의 히트곡을 뽑자면 임창정의 ‘내가 저지른 사랑’이나, 트와이스의 ‘TT’, 혹은 “음악대장”이 다시 부른 ‘Lazenca Save Us’ 등의 노래들이 후보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 수 등의 정량적인 통계는 ○넷이나 멜●이 더 잘 낼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주관적인, 개인적인 감상의 올해의 노래들을 뽑아보았다.

이런 플레이리스트는 모 야매룽다

그것은 바로, 2016년 올 한해에 있었던 사건과 담론들을 돌아볼 수 있는 노래들. 올해를 돌아볼 수 있는 여러 키워드들을, 노래를 테마로 해서 뽑아보고 정리했다. 기준이 조금 색다르다 보니 선정된 곡들도 약간은 결이 다르지만, 그래도 댓글창에서 다른 “복면가왕 레전드” 지지자들과 동서로 나뉘어 싸우는 것보단 조금 더 생산적일 것이라고 믿으며.

 

1. 올해의 트렌드

PRODUCE 101, PICK ME

발매일: 2015.12.17
발매사: CJ E&M MUSIC
기획사: CJ E&M
장르: Electronica

프로듀스101 Pick Me 앨범커버

ⓒ CJ E&M

‘Pick Me’(와 그것으로 대표되는 프로듀스 101)은 2016년 대한민국 방송 트렌드의 집약체, 아니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다. 프로듀스 101의 거대한 분홍 삼각형은 첫번째로는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묵시록적 반증이었다. 앞으로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이제 이만큼의 인력, 자본력, 그리고 화제성을 끌어오지 못한다면 이제 그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란 선언이기도 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K팝스타가 종영된다는 점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지금 아이돌 시장은 과포화돼 있다. 한 해에 데뷔만 수십 그룹, 그리고 그 물밑에서 데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만 수천 명으로 짐작된다. ‘고시 낭인’, ‘취준생’이 거대한 사회적 손실인 만큼이나 이 ‘데뷔 낭인 연습생’ 역시 마찬가지의 손실이다. 그렇게 보면 프로듀스 101은 이들의 ‘로스쿨’을 자처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매 회차마다 무수한 출연자들이 눈물을 보이는 극한 경쟁 현장의 르포에 더욱 가까웠다. 그 고생-신파 서사를 셀링 포인트로 삼는 엠넷의 행보는 악마적이면서도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이들은 경쟁자라기보다는 대중에게 구원받길 기다리는 객체들에 더욱 가까웠다. 이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그들의 노력 여하의 문제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호오에 달렸었다. ‘인성’을 검증받기 위해 3천만 원의 빚을 감수할 의사가 있어야 했고, ‘센터’나 ‘메인 보컬’을 하고 싶다고 강단 있게 말하지도 그걸 포기하지도 못했다. 완벽하게 무해한 소녀로서 끝끝내 웃고 있어야 했던 그들이야말로, 2016년 우리가 가장 최근에 필사적으로 따라잡고 있었던 바로 그 자세를 잡고 있었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딱 그 포즈와 분홍빛 교복을 똑같이 입고 “나를 뽑아달라” 후크송을 부르는 것에서, 이 “트렌드”는 완성돼 있었다.

 

2. 올해의 재발견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발매일: 2007.08.03
발매사: (주)KT뮤직
기획사: (주)SM엔터테인먼트
장르: Dance

소녀시대 다시만난세계 앨범커버

ⓒ SM Entertainment

이 노래가 이렇게 쓰일 것을 2007년의 그 누가 알았을까? 소녀소녀한 복장의 9명이 나와 발차기 안무를 선보이던 때에는 정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2014년 12월 도쿄돔에서 8명이 이 곡을 발라드 버전으로 다시 부른 걸 들어 보았다면, 어쩌면 미리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쾌한 리듬에 가려져 있었던 이 노래의 가사가 주는 비장함과 아련함, 그리고 벅차오르는 그 무엇을 말이다.

“다만세”의 가사는 뚜렷한 이미지나 일관된 상황을 그려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이 노래는 어떤 상황에서든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일 수도, 힘든 길을 같이 걸어갈 동료일 수도, 혹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을 함께 맞닥뜨린 이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거대한 불의의 시대를 함께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를 노래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반대 시위 소식에서, 나와 우리는 바로 그런 ‘다시 만난 세계’를 다시 만났다.

이 학내투쟁을 폄훼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졸업장의 희소성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이다… 등등. 그러나 분명 인정해야 할 점은, 이 사회, 특히 대학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이상하고 비상식적인 일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여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화여대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전면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시위를 해낸 이화여대의 승리는 피켓과 마스크를 들고 행동에 나섰던, 모교를 그저 “이 느낌 이대로” 사랑하고 싶었던 평범한 이들의 승리였다. 그저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는 대신.

 

3. 올해의 역주행

볼빨간 사춘기, 우주를 줄께

발매일: 2016.08.29
발매사: 벅스
기획사: 쇼파르
장르: Folk

볼빨간사춘기 RED PLANET 앨범커버

ⓒ SHOFAR

볼빨간사춘기는 2011년에 결성된 팀이지만 ‘슈스케’에 세 번 도전해 두 번은 예선 탈락하고 마지막 한 번에서야 겨우 슈퍼위크에 진출한 정도의 미미한 성과만을 낸 상황이었다. 우승은 커녕 탑텐에도 들지 못했고, 그것도 무려 2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의 볼빨간사춘기는 작은 인디 소속사에 있는 경북 영주 시골 밴드였을 뿐이다. 번듯한 ‘푸쉬’나 ‘홍보’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앨범 발매 후 한달여만에 볼빨간사춘기는 전통의 음원 강자 임창정을 꺾고 스트리밍 1위의 역주행 신화를 달성하고야 만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데뷔와 동시에 은퇴한다. 초반에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하고, 그 이후에 홍보할 돈도 기다릴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 유리한 점은 바로 여기―자본과 인지도의 차이에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대형 기획사 신인에 한번 더 관심을 가져 주고, 그 한번의 노출 빈도 차이가 많은 것을 바꾼다. 그래서 그들 같은 ‘인디’의 역주행은 유난히 더욱 반갑게 느껴진 언더독 역전의 신화였다.

소속사의 크기는 말하자면 수저 같은 것일진대, 그래도 매년 이러한 역주행 신화의 주인공이 하나씩 나오는 걸 보면 이 가요계에도 그나마 이런 역전의 공간이 조금은 남아있는 모양이다. 올해의 극적인 역주행의 주인공은 볼빨간사춘기와 한동근 둘이었고, 둘 중 상대적으로 더욱 흙수저인 볼빨간사춘기를 올해의 역주행으로 선정했다. 2014년에 EXID, 2015년에 여자친구에 있었다면 2016년에는 볼빨간사춘기가 있었다.

 

4. 올해의 스웨거

BeWhy, Forever

발매일: 2016.07.02
발매사: CJ E&M MUSIC
기획사: CJ E&M
장르: Rap / Hip-hop

쇼미더머니5 에피소드3 앨범커버

ⓒ m.net

이젠 힙합이 대한민국 대중 문화의 주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에게 수면 위로 떠오를 활로가 되어 준 쇼미더머니가 5년째 계속되는 사이, ‘라임’이나 ‘펀치라인’ 등의 기술적 용어는 물론이고 유구한 동방예의지국에서 이방인 같기만 하던 자기자랑의 문법 역시 “swag”이라는 개념과 함께 친숙해지고 있다. 무수히 많은 래퍼들이 돈, 여자, 차, 잘남, 하여튼 각자의 swag을 자랑하는 와중에, 가장 독특한 스웨거를 뽐낸 이가 있다.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마저 swag으로 뽐냈던 BeWhy가 그다.

그는 현란한 랩 스킬로 예측 불허의 리듬감을 구현해내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단연 화제였으나, 대놓고 “무언가를 얻지 못해도 난 걷지 믿음으로 역시 주님께 맡겼지”라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더욱 화젯거리였다.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스웩이 지겹던 이들에게 이 ‘신앙 스웩’은 참으로 신선했고, 심지어 건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들 ‘크 기저귀 갈아입고 교회 등록하러 갑니다’ 감탄하기에 바빴지만, 사실 그 가사 속 실제 내용은 사랑이나 구원 같은 종교윤리적인 지향점보다는 ‘여호수아적 선민 의식’에 더 가까웠다.

비와이의 신앙고백에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여기에 있다. 간증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수 믿어서 잘된 나'와 '잘난 나의 신앙 자랑' 이라는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고질적인 성공주의에 대한 집착 그대로 말이다. 신앙이 곧 성공이며 성공이 바로 신앙이라는 명제 속에서 탄생한 많은 괴물들을 우리는 올해 유달리 많이 목격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으로 시작해 윤창중, 김진태, 이정현, 안종범,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최근에 교회에 귀의하여 헌금을 많이 낸다는 최순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신앙을 그저 성공의 길잡이로서만 삼아온 이들의 치부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지 않은가. BeWhy의 swag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불편함의 정체이다.

 

5. 올해의 논쟁

DJ DOC, 수취인분명

공개일: 2016.11.25
제작사: 부다레코드
기획사: 부다레코드
장르: Rap / Hip-hop

수취인분명 비공식뮤직비디오 캡처

ⓒ GO발뉴스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불통이 광범위하게 누적되던 마당에 ‘박근혜 게이트’마저 터지자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역대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를 이어갔다. 자연히 시국을 비판하는 노래들이 쏟아지고 무수한 가수들이 촛불 문화제에 참석했다. 그 중에서도 “시대의 반항아”인 DJ DOC의 ‘수취인분명’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가장 수위 높은 비난을 담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여기에 이 곡 속의 여성혐오 혐의와 공연 취소 논란까지, 올해를 마무리하는 논쟁적 곡으로 선정될 이유가 충분했다.

올해 쏟아져나온 것은 시국 비판만이 아니었다. 사회 현상과 문화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담론과 비평 역시 올해 그 어떤 때보다도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으로 본격화한 페미니즘 담론은 여러 사회·문화 현상들에 대해서 더욱 요란하게 저항했다. 정의당의 중식이 밴드 논란, 김자연 성우 클로저스 목소리 삭제 사건 등의 사건에서도,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서도 그동안 참고 숨겨져 왔던 성차별에 대한 폭로와 발언과 연대는 폭발적으로 전개됐다. 그 ‘성과’ 내지 ‘불똥’으로서, 이 곡을 포함해 공연을 할 예정이었던 DJ DOC의 촛불문화제 순서 전체가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검열이었을까 아니면 자정이었을까?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 뭉쳐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그 자리에서 쉽게 배제될 수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말한다. 박근혜의 실정을 비판하기 위해 박근혜가 ‘여성’임을 들먹일 이유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병신년”이란 표현 역시 맥락과 상관없이 성차별적인 표현이라고,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세뇨리땅”이나 “미스 팍”마저도 혐오의 표현인 거라고. 촛불로 모인 우리가 ‘더 많이 더 함께’ 가고자 했던 게 맞다면, 이 목소리들은 더 많은 논의로 거듭날 기회를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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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수

안학수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대학생입니다. 집에도 가고 싶고 취직도 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