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찍어드립니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잊지 않도록. “한양대 ERICA 다 찍어드립니다.” 운영자 이융희 인터뷰.

뭘 찍어준다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내게 만족감을 주는 것들은 그저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기적인 심보가 발동한 것이다.?어쩌다 좋아서 소개를 해주는 것은 보통?나눔의 개념보단, ‘과시의 성향이 강하다.?그런데 여기 자신의 애정어린 시선을 아낌없이 공유하려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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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소개

이융희. 1987년생.

  •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한양대학교로 편입
  • 자신의 두 번째 학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학교의 이곳저곳을 사진 찍기 시작.
  • 숨겨져 있던 학교 내의 명소들은, 학생들의 셀카 속 단골 배경으로 자리했고, 학생들이 학교를 학업의 수단이 아닌, 심미적 대상으로 마주하게 하는 데 일조.
  • 한양대 ERICA - 다 찍어드립니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듦.
  • 자신의 애교(愛校)심에 매료된 학생들을 모델로 무료 화보 촬영을 진행하며 4학년 2학기를 아주 즐기고 있다.

 

융희

제가 예전에 찍었던 학교 캠퍼스의 사진을 보고 다른 학교 제치고 이 학교(한양대)로 입학했다는 친구가 있더라구요. 물론 그 안에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겠지만(웃음),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거죠. ‘내가 찍은 사진 하나가, 다른 누군가에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했어요. 사진을 찍는 행위로도 사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낸 거잖아요.

 

우리 학교 이쁜 걸 학생들이 모르더라

상일

페이지 좋아요 수가 1000을 훌쩍 넘겼더라구요?

융희

(단호하게)1600! 사실 목표는 2000밖에 안 돼요. 우리 학교라는 환경에 국한된 거라 분명한 한계치는 있어요. 사진을 소재로 한 페이스북 페이지는, 사진 자체에 “좋아요”를 누르지, 페이지 자체를 좋아하진 않거든요. 우리 학교 사람들이 더 누를 거라고 보진 않고, 아마 다른 학교 사람들도 조금씩 관심을 더 보이겠지요.

상일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한 거죠?

융희

올해 5월 말부터 시작했어요.

상일

생각보다 오래 되진 않았네요? 갑자기 하려고 한 건가요?

융희

우리 학교에 양귀비 꽃밭이 있어요.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되게 많거든요. 우리 학교 진짜 이쁜데, 40종이 넘는 야생 동물들이 서식하고, 자연 환경도 잘 갖춰져 있고, 이걸 왜 우리 학교 학생들은 모를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거죠. 페이스북에 학교 정경들을 찍은 사진들을 올리면 가장 많은 의견은 “우리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예요. 우리 학교 공대나 경상계열 선배들은 후배들한테 그런 이야길 많이 해요. “야 너 학교에서 해 주는 취업 특강이라던가, 면접 특강 다 들어! 이거 다 우리 등록금이야! 챙겨먹을 건 챙겨먹어야지.”(웃음) 학교의 조경을 꾸미는 것 다 등록금이거든요. 이런거 다 즐겨 봐야지. 사진으로라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작한 거예요.

상일

학교의 아름다움을 알려줄 가이드라인으로 시작하셨나요?

융희

전부터 농담처럼 사진 동아리 친구들이랑 말했어요. "대신 전해드립니다."와 같은 페이지도 있는데, "대신 찍어드립니다."같은 페이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중 우리 학교 양귀비 꽃밭 사진을 업로드한 블로그에 들어갔어요.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외부 사람이었어요. 어, 우리 학교는 내가 제일 예쁘게 찍을 수 있는데. 단순히 저런 모습이 우리 학교의 예쁜 모습의 전부가 아닌데… 그때 결심했죠. 그냥 만들어버리자.

재능기부와는 다르다! 재능기부와는!!

상일

처음엔 학생들의 모습을 찍는 게 아니었군요.

융희

네. 처음엔 학생들 모습이 메인은 아니었어요. 이건 "불후의 명곡"같아요. 난 프로그램을 갖춰두고, 사람들은 방청객처럼 다가와서 같이 그 프로그램의 일부가 되는 거지. 전 이 활동을 재능기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가진 능력으로 사람들을 돕는 게 아니라, 난 그저 자리를 깔아두고 사람들과 같이 노는 거예요. 유기체와 같은 거죠. 사실 사람들은 이용 수단이라고 볼 수 있죠(웃음). 제 타임라인에 학교 사진을 올려도 퍼지긴 퍼지는데, 내 인맥보다도 사진을 좋아해 주는 저 사람들의 인맥을 이용하자는 거였죠. 그럼 제가 저 사람의 모습을 찍어주면, 저 사람의 인맥을 통해 우리 페이지도 알려지고, 우리 학교를 더더욱 알릴 수 있고. 그렇게 학생들을 찍게 된 거예요.

상일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는데, 다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촬영 의뢰를 하는군요.

융희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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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

사람들이 원하는 포즈나 구도 등을 가지고 오나요?

융희

스냅사진이라고 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제공하긴 하죠. 처음엔 사람들이 이미지 사진처럼 옷도 맞춰서 오고, 원하는 형식들을 요구했는데, 점차적으로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지. 끽해야 “저희가 비누방울을 불고 노는 모습을 찍어주세요.” 라던지, “저희가 데이트하는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찍는 것처럼 해주세요.”라던지. 결국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하는 거예요. 저도 의도적인 이미지 사진을 찍지는 않겠다라고 공지로 정해놨어요. 찍어봐야 재미도 없고, 그게 재능기부인 거 같아요. 그들이 만든 상황에 난 가서 도움을 줄 뿐이고.

예상할 수 없는 사진 한 장의 힘

융희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이 좋아요. 제 의도는 풍경이 아름답게 나오는 건데, 늘 사람들이 예쁘게 나와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봅니다. 지금까지 30팀 정도의 커플 사진을 찍었는데, 늘 비슷한 모습들을 예상하니까, 한번쯤은 색다른 시도를 해봐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매너리즘에 빠지는데, 한 커플이 있었어요. 서로 퉁명스럽고, 애정표현도 서툰 사람들이었는데.

촬영 후반부로 갈 수록, 설정으론 표현될 수 없는 진실한 무언가를 프레임에서 발견하곤 한다.

촬영 후반부로 갈 수록, 설정으론 표현될 수 없는 진실한 무언가를 프레임에서 발견하곤 한다.

상일

케미가 없군요.

융희

그렇죠! 근데 그들이 사진을 찍으려니까 예비역 남자 둘이 찍어도 그것보단 어색하지 않을 거란 말이지.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했어요. 남자분이 뒤에서 여자분을 끌어안고 쳐다봐 줘라, 하는 식으로. 촬영이 계속되면서 서로 표정도 점점 달라지고, 포즈도 더 긴밀해지고. 촬영을 하면 할수록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거죠. 그럴 때 뿌듯하죠.

상일

촬영을 하지 않았으면, 계속 주말 부부같은 사이로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건 꼭 아이돌 덕질하는 기분이에요

상일

"다 찍어드립니다!"활동을 통해서 많은 점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융희

아마 저는 많이 바뀌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페이지를 만들기 전부터 저는 학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고, 아마 어느 곳이든지 4년 동안 몸담았다면 그곳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났을 거예요. 그래서 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뀌어 가는 모습들은 많이 보여요.

상일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뭘까요?

융희

학교에 약초원이라는 곳이 있어요. 앞서 말한 양귀비 꽃밭 같은 경우도 그렇구요. 다 사람들이 모르던 곳인데, 이젠 학생들이 어디냐고 물어봐요.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요. 학교 곳곳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그 사람들은 분명 그곳을 갈 거구요. 그럴 때 굉장히 뿌듯하죠.

모델 - 이초원 (21,학생)

모델 - 이초원 (21,학생)

상일

나만 알던 곳인데,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리다니 젠장! 하는 묘한 질투심 같은 게 생기진 않았나요?

융희

(웃음) 학교 내에서는 없었어요. 그런데 외부 출사지 같은 경우는, 항동 철길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참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는데, "서울,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그곳이 서울 4대 출사지로 선정됐더라구요! 그전까진 정말 외진 곳이었고, 거의 가는 사람이라곤 항상 나밖에 없었는데, 이젠 바글바글해졌어요! 아놔!

상일

마치 나만 알던 연예인인데, 이젠 팬이 많아져서 생기는 묘한 서글픔 같은 (웃음)

융희

사실 뭐 좋은 거죠. 다 알리려고 하는 건데요. 아이돌 덕질하는 느낌 같아요. “나만 좋아할 거야!“ 하고 소유하는 팬이 있는 반면, ”야! 너네 OO 오빠 춤추는 거 봤냐! 대박! 한번 봐봐“ 하고 전파하는 애들이 있어요. 전 후자죠. 이 좋은 곳들을 우리 학교 학생들이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막 데리고 다니면서 찍고 싶죠. 쫌 알라고! 여기를!

대신 해주는 것들이 왜 지금 뜰까요?

상일

지금 학생들은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죠. 바쁘기로 따지자면 톱을 달리는 대학생들에게 어쩌면 [다 찍어드립니다.]가 한 템포 쉼의 미학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융희

무엇보다, 직접 찾지 못했던 것들을 우리가 대신 찾아 주었고,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상일

다들 아예 관심이 없던 건 아니었는데, 그걸 시작할 여유도 용기도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융희

사실, 지금 학생들은 무엇인가를 도전하는 데 있어 굉장히 겁을 내요. 찾기만 하면 방법은 있는데 말이죠. 우린 재능기부를 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사실. 전문적인 사람들이 독식을 하면서 다들 내가 그걸 해도 되나 하는 두려움을 겪는데,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걸 보면, 사회가 그만큼 획일화되고 세분화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죠. 무언가를 발현하고 싶은데, 그 자체가 두렵고,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지금 “대신 무언가를 해주는 페이지”의 붐을 일으킨 건 아닐까 싶어요.

상일

내가 재밌으면 해야 하는 건데, 이런 행위를 세상은 독특하다고 그냥 규정해 버리거든요. 어른들이 특히 그래요. 도전정신 결여를 논하는데, 늘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거죠. 모순 아닌가요?

융희

결과를 생각하면 겁나죠. 근데 그냥 질러 버리면 알아서 되더라구요. 저도 이 페이지를 고심하고 만든 건 아니에요. 근데 일단 만들고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하느냐 마느냐 그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2주가 흘렀다. 페이스북에는 그가 찍은 학교 사진이 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2주가 흘렀다. 페이스북에는 그가 찍은 학교 사진이 <대한민국 국보급 캠퍼스를 찾아라> 공모전에서 1등을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보였다.

요 근래, 학교 학생들이 만들어낸 페이지가 페이스북의 한 축을 자리한 것 같다. 영화를 볼 여유는 없지만, 영화 얘기는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변호사", 하고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신 전해드립니다.", 자신만의 글귀를 멋지게 캘리그라피로 제작해 주는 "생각의 숲"등. 이 중심에는 그가 만들어낸 "다 찍어드립니다!"페이지가 자리했다. “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대신 무엇을 해준다“라는 기조가 깃든 페이지들이 학교 내에서 붐으로 일어나는 데 일조한 그는, 또 어떤 엄청나게 될지 모르는 일들을 구상 중일까? 고민하지 않고 질러 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참 다행인 ?것 같다. 그가 지르는 일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해졌다. 곧 복학이라 바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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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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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말은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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