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부터 취미로 블로그를 해 왔다.
원래는 소소하게 서로이웃 친구들과만 교류하는 용도였는데, 후기가 잘 없을 만한 소재들로 전체공개 포스팅을 몇 개 작성하다 보니 조금씩 방문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쁠&러$^그 삽/니/다’ 라거나 ‘→→무료 뷰티케어 체험단!! 모집합니다←←’ 같은 쪽지나 메일도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ㅇㅇㅇ페어 블로그 서포터즈를 모집합니다’
이 메일을 받기 직전, 비슷한 주제로 전에 진행된 박람회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내게 서포터즈 모집 메일을 보낸 것 같았다.블로그를 통해 교묘하게 광고하는 수작질이나, 체험단 명목으로 어쩔 수 없이 좋은 후기를 작성하게 하는 것들은 끔찍하게 싫어했었지만‘서포터즈’라고 밝히고 이런 포스팅을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공식적인 서포터즈 지원 과정이나 발대식, 서포터즈 교육이나 모임 등도 하나도 없고 그냥 모집 홍보와 활동내용, 지원사항만 나와 있어서 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이렇게 불안하게 보이는 서포터즈라도 한 번 해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어차피 알아줄 만한, 좀 큰 서포터즈 활동 같은 것에 지원하려면 타 서포터즈 경력쯤은 몇 개 있어야 붙기 쉬울 테니 이런 별 것 아닌 거라도 해 두자는 생각이 그 첫 번째 합리화였다. 더불어 나중에 홍보나 마케팅 쪽으로 진로를 정할 생각도 조금 있었는데, 이걸 출발점으로 해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머지 구상도 덧붙였다.
서포터즈로 일을 해 주는 대가라는 것이
꼴랑 무료입장권 50장과 (행사 이후 포스팅 조회수 등으로 평가하여 실적 좋은 상위 3명에 한해 따로 준다는) 백화점 상품권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다 나중에 스펙이 되려니 하고 일단 해 보기로 했다. 받은 메일에 답장으로 이름, 전화번호, 운영 중인 블로그 주소 정도를 적어 보내면 자동으로 지원이 된다고 했고, 사무국에서 다시 연락을 받으면 바로 활동이 개시된다고 적혀 있었다. 메일을 보냈고, 당연하다는 듯이 연락이 왔다.
활동 내용은 이전에 포스팅한 비슷한 주제의 다른 박람회 후기 글 하단에 해당 박람회 홍보 문구를 넣을 것, 전시회 기간 이전에 주 1회 이상 사전 포스팅을 할 것, 전시 기간에 직접 참관한 후 1회 이상 참관 후기 포스팅을 올릴 것, 박람회가 끝난 후 방문자 수나 포스팅 수 등에 관한 통계 자료를 보낼 것 네 가지였다.
딱히 어떤 식으로 쓰라든가 하는 말도 없었고, 그냥 올려만 달라는 얘기였다. 박람회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참고하여 포스팅을 한두 개 하고 있자니 보내준다던 무료입장권이 왔고, 나도 그걸 이용해서 박람회를 보러 갔다. 생각해보면 서포터즈라고 따로 취재 관련 지원을 해 주거나, 명찰을 만들어주는 등의 기본적인 대우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박람회가 끝남과 동시에 내 서포터즈 활동도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1년쯤 후, 모 기업 홍보팀 인턴에 지원할 때 이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이 ‘ㅇㅇㅇ페어’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작성된 포스팅뿐이었고, 나의 글들을 통해 이 행사가 어떠한 ‘서포트’를 받았다는 확신이 전혀 서지 않아서였다.
서포터즈 담당자는 포스팅 가이드라인도, 서포터즈 대우도, 포스팅을 위한 정보 제공도 아무것도 제대로 해준 게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나도 정성을 쏟아서 글을 잘 써줄 만한 이유가 생기질 않았다. 아주 사소한 곳까지 생각해 보자면 발대식이나 해단식 사진도 한 장 없었고, 그 사소한 서포터즈 임명장도 준 적 없었다.
게다가 서포터즈 지원 사항에 포함되어 있던 ‘엠블럼 제공’은 그냥 홈페이지 로고랑 똑같은 걸 크기만 대충 조정해서 보내준 거였고, 포스팅 하단에 한 번 박을 때밖에 쓸 일이 없었다. 무료입장권은 그냥 홍보용으로 일부러 어디 카페 같은 곳 데스크에 뿌려뒀을 법한 종이쪼가리였다. 물론 이걸 가지고 내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런 종류의 행사들은 대체로 사전신청을 하면 매우 싸게, 심지어는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경우도 많은 편이다.
결국 나는 페어 기간이 끝난 후 블로그 방문자 수, 포스팅 조회수 등의 자료를 보내지 않았고, 그쪽에서도 따로 요청하는 연락은 없었다. 물론 누가 상위 3명이었는지, 약속되었던 백화점 상품권을 누가 받기는 받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사실 공식적인 모집 홍보가 없었고 서포터즈 대우가 미비하다는 점을 눈치챘을 때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리고 어리석은 날의 민망한 추억이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 낭비와 함께 서로 아무런 ‘서포트’가 되지 못했던 나의 서포터즈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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